영웅적 소방관의 최대 약점이 우울증이라면...

입력
2022.08.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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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소방 공무원들은 수많은 환자들의 병상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대규모 산불까지 연이어 발생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영웅적 활약을 펼쳤다.

필자가 진료실에서 만났던 소방 공무원은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다부진 신체에 투철한 사명감까지, 영화 속 특급전사 캐릭터가 현신(現身)한 것 같았다. 그의 동료들 역시 소명의식으로 무장된,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여느 때처럼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날, 위기에 빠진 구조 요청자들은 안전하게 구조했지만 동료 한 사람은 현장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주간 및 야간, 휴무 3교대를 뛰며 수년간 함께 먹고 자던 사이였기에, 상실감은 매우 컸다. 장례식장에서 동료의 부인과 아이를 마주했을 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죄책감이었다. 나만 살아 돌아왔다는.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하지만 영웅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고통을 숨기거나 그저 감내해야 한다는 잘못된 선입견,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 바쁜 업무 등으로 주저하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수면장애, 우울증의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와 남은 동료들도 뒤늦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필자를 만난 시점의 그는 우울증이 중증으로 발전된 상태였다. 그의 상태를 더 주의 깊게 보았던 이유는, 중증의 우울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특정한 자극(음주, 특정 기억 등)이 가해져 부정적 충동성이 강화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볼 순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살 생각’은 죽음 자체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고통과 좌절을 견디기 힘든 상태에서 수반되는 우울감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우울감이 치료되면 ‘자살 생각’ 또한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 잠재된 죄책감의 초점을 ‘그림자’에서 ‘실재(實在)’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힘을 얻는 가족과 동료가 있다는 점이 그를 수렁에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 또한 중증 우울증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우울제도 기존 경구용 항우울제보다 빠르게 증상을 완화시켜 줌으로써 그가 안정적으로 호전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소방 공무원들은 오늘도 신고를 받으면 어둠 속으로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이들이다. 이 영웅들에게 불가피하게 지어지는 그림자는 우리 사회가 함께 걷어내 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의료비 지원과 같은 치료에 대한 접근성과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슈퍼 히어로도 마음에 어둠이 찾아왔다면 주저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민범준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공공의료본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