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잇는 '흰색'..."영감 준 한강 작가님 꼭 보셨으면"

입력
2022.07.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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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설치작가, 시오타 치하루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지난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 한강의 소설 ‘흰’은 세상의 ‘흰 것’들을 통해 상실과 애도, 부활을 이야기한다. 예컨대 소설의 화자는 ‘배내옷’을 매개로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를 생각한다. 시골 외딴집에서 산달이 많이 남은 시점에 갑자기 양수가 터진 어머니는 통증을 참으면서 급하게 작은 배내옷을 만든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아기에게 그 옷을 입히고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속삭이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아기는 싸늘하게 식는다. 흰색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가르는 경계이면서 그들을 잇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일본 현대 미술계의 주목받는 작가인 시오타 치하루가 다음 달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최신작 ‘인 메모리(In Memory)’를 순백으로 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인 메모리'는 다름 아닌 한강의 ‘흰’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흰색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흰 실과 공중에 내걸린 흰 배, 흰 엽서와 흰 드레스는 인간이 죽더라도 기억은 항상 머무르며 그 기억은 다시 누군가에게로 이동해 닿는다는 시오타의 믿음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최근 방한한 시오타는 “흰색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나는 흰색이 생과 사 양쪽을 모두 표현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배는 기억을 담고, 기억을 움직이고, 어딘가로 이동시키는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시오타는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개인전(2019년)처럼 주로 붉은 실을 엮어서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작풍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특별히 흰색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그는 “소설 흰을 읽고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면서 자신의 경험이 소설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오타는 2005년과 2017년 난소암을 앓았는데 첫 투병에서 아이를 잃었다. 그는 “임신 6개월이었는데 양수가 터져버렸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아이는 몸 안에서 살아 있지만 아마 곧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서 충격을 받았다”면서 “소설에서도 아이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는다. 상당히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해왔지만 한국과 인연이 많다. 그는 배우자가 한국 출신이라면서 '독일 사람'이자 '부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작가는 2020년 주변의 권유를 받아 남편과 함께 한강의 소설을 읽었다면서 “소설의 어머니를 보면서 국가를 넘어서 그 마음이 전달되는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소설 표지에 적힌 ‘죽지 마, 죽지 마, 부탁할게’라는 글귀도 그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과거에도 흰색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소설에서 나타난 흰색의 상징적 의미를 보면서 “이번에 꼭 흰색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시오타는 한강 작가에게 따로 연락한 적은 없다면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전했다. “사람으로서 느꼈던 공통점을 책에서 표현하고, 작품을 통해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강 작가님께서도 제 작품을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고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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