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는데 45시간’ 쿠바 배우 “한국 배우에 매료...이병헌과 연기하고파”

입력
2022.07.19 04:30
24면
쿠바영화제로 방한한 알리시아 에차바리아 비달

서울에 오기까지 45시간가량이 걸렸다. 머나먼 곳에서 출발하기는 했다. 물리적 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역사, 정치적으로도 멀고도 먼 나라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를 찾은 배우 알리시아 에차바리아 비달(32)은 한국과 미수교국인 쿠바에서 왔다. 그는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권 방문 자체가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에차바리아는 아바나를 출발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총비행시간은 27시간 20분.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17시간을 대기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15~17일 외교부 주최로 서울 종로구 한 극장에서 열린 쿠바영화제 참석을 위해서였다. 첫 방한이긴 하지만 그는 남산타워를 가리키면서 “TV드라마로 많이 봐서 익숙한 모습”이라며 낯설어 하지 않았다. 불편을 감수하고 먼 길을 온 이유를 묻자 그는 한국 영화ㆍ드라마와의 인연을 들었다. 에차바리아는 “2010년쯤 처음 접한 한국 영화 ‘쌍화점’(2009)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됐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 항상 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류 팬이었던 친구 덕에 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는 대학 수업 중에 볼 정도로 좋아했다”고도 했다. 이후 쿠바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게 됐다. 에차바리아는 배우답게 연기에서 한국 콘텐츠의 특징과 강점을 찾았다. “인물들이 감정을 다 표출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슬픔을 더 많이 표현하려 하는 게 가장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선 에차바리아가 주연을 맡은 ‘우화’(2011) 등을 포함해 쿠바 영화 8편이 상영됐다. '우화'는 어머니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매춘에 나선 여자 대학생 세스니아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대학생의 사연을 그렸다. 서방 주도 경제 제재로 초래된 극심한 경제난이 쿠바 사회에 어떤 어둠을 드리웠는지를 보여준다. 세스니아를 연기한 에차바리아는 “쿠바의 쓰디쓴 현실인 경제 문제를 다룬 영화”라며 “쿠바에선 박사 과정에 들어가도 공부를 제대로 끝내는 학생이 거의 없는데 다 경제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화’는 쿠바 사회를 향한 일종의 경고 같은 영화”라고 했다.

통념과 달리 쿠바 영화가 꽤 사회 비판적이라고 하자 에차바리아는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쿠바영화예술산업협회(ICAIC)가 영화 제작에 관여하고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 비판적 내용은 일부 허용되긴 하지만 체제나 권력 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통제된다는 얘기다. 그는 “인터넷으로 뭐든 볼 자유가 있고, 뭐든 사고팔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통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에차바리아는 “쿠바는 고립된 섬나라이다 보니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나 이민 문제를 다룬 영화가 많다”며 쿠바 영화의 경향을 소개했다. “고난을 슬픔이나 비극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고 좀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쿠바인들의 강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영화인 누구와 일하고 싶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이병헌요. 인스타그램 활동을 포함해 이병헌이 하는 모든 것을 다 좋아해요. 감정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표현해내는 연기에 마음이 정말 끌려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