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집권당도 부스 차리고 응원...서울과 사뭇 다른 베를린 성소수자 축제

입력
2022.07.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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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LGBT+축제 가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축제 참여
과격 반대  시위 없고, 경찰·보수정당도 지지

서울광장이 퀴어문화축제로 무지갯빛이 됐을 무렵, 독일 베를린에서도 'LGBT+'(성소수자를 뜻하는 약어) 축제가 열렸다. 서울에서처럼 베를린에서도, 축제 참가자들은 서로 뜨겁게 연대했다. 하지만 언뜻 비슷해 보이는 축제 속으로 몇 걸음 들어가 보니, 다른 모습이 보였다.

우선 성소수자를 반대·혐오하는 조직적 시위가 없었다. 경찰도, 주요 정당도 모두 축제 한복판에 뛰어들어 힘껏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노인도, 갓난아이도 축제로… 대기업도 '격한' 후원

독일 베를린 놀렌도르프 광장 주변 2만㎡ 공간에서는 16, 17일(현지시간)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가 열렸다. 가장 규모가 큰 LGBT+ 축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23일 개최)를 일주일 앞두고 열린 전야제격 행사였다. 주최 측은 방문객을 35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17일 찾은 광장은 갓난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의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광장에 모인 상당수가 청년인 것과는 사뭇 달랐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나니씨는 "축제니까 당연히 아이와 함께 왔다"고 했다. 초콜릿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한 남성은 '왜 방문했나'라는 질문에 "'맥주 대신 왜 초콜릿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냐'라고는 왜 묻지 않나"라며 웃었다. 축제에 오는 게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놀렌도르프 광장에서는 유명 기업들이 부스를 차리고 손님을 맞이했다. 독일의 △슈파카세(은행) △AOK(보험사) △벡스(맥주회사) △레베(슈퍼마켓 체인) 등이 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기업이 기꺼이 돈을 들였다는 건, 행사 참여가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성소수자 축제를 지원한다'는 게 결코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울광장 퀴어축제 부스 목록에서는 유력 기업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동성애는 병" 외치는 단체들은 없었다

성소수자 축제를 반대하는, 이른바 '맞불 집회'도 찾을 수 없었다. 시민단체 '이너프이즈이너프' 관계자는 "'성소수자를 응원하자'고 마련한 공간에 단체로 몰려와서 '성소수자가 싫다'고 소리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며 "큰 규모의 축제에 자주 참여하는데, 그런 행동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서울광장 퀴어축제 주변에서 올해도 "동성애는 병이고, 죄악"이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렇다고 베를린이 폭력이 전혀 없는 '청정 구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고,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축제에서 만난 이들은 "개인의 일탈은 있지만 조직적 반대는 흔치 않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도 '응원 주체'로... "우리가 더 나서야 폭력 사라져"

'작은 폭력'도 막아야 하기에, 곳곳엔 경찰이 있었다. 서울광장의 모습과 유사했다. 서울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틈없이, 철두철미하게' 늘어선 차벽은 아니었지만, 놀렌도르프 광장 진입로마다 경찰차가 서 있었다. 앰뷸런스도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놀렌도르프 광장에서의 경찰 역할은 조금 달라 보였다. 경찰은 축제 한복판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 경찰은 "우리는 소수자를 응원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며 "우리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줘야 폭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경찰은 관대하고, 대한민국의 경찰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찰 역할은 정부 입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태도는 독일 정부가 성소수자를 '연대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서울광장 축제는 '관리의 대상'에 가깝다. 올해 축제도 서울시의 '엄격한 심의'를 거쳤고, 축제 승인에는 '과도한 노출 제한' 등 조건이 따라붙었다.

주요 정당 대거 참여... 보수당도 "연대가 상식"

독일 정당들의 부스가 몰려 있는 구역도 있었다. 7개의 정당이 부스를 차렸는데, 독일 신호등 연립정부에 참여 중인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은 물론, 보수색이 짙은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의 부스도 보였다. 서울광장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차원의 움직임은 없었다. 지지세가 크지 않은 진보당·녹색당이 부스를 차렸을 뿐이었다.

사민당 소속 다프네 요르단씨는 "주요 정당의 LGBT+ 행사 참여는 일반적인 일이다. 옆엔 (보수색이 강한) 기민련 부스도 있다"며 웃었다. 기민련 소속 카스텐 부흐홀츠씨는 "당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확실한 건 부스는 중앙당 돈으로 차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당보다 응원 밀도는 낮을 수 있지만, 기민련도 성소수자를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권자가 등을 돌리는 게 두렵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는 "연대는 당연한 것이고, 90% 시민의 지지를 받는다""이게 싫은 10%는 극우 정당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여러 정당들이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건, 각 정당에 소속된 하위 단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인정하는 독일 정당의 특수성 때문이다. 기민련이 보수색이 강하긴 하지만, 하위 단체 중에는 LGBT+ 행사를 지지하는 곳이 있고 중앙당도 이를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녹색당 관계자는 "독일이 연방제인 것처럼 하위 단체 목소리가 충분히 인정되기 때문에 기민련도 부스를 차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두 도시의 축제는 왜 달랐을까. 놀렌도르프 광장에서 만난 이들의 입을 통해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독일도 원래부터 이 모습은 아니었다는 건 분명했다. 자민당 소속 아르노 자이델씨는 "독일 정치인들도 유권자를 잃을까 봐 두려워했는데, '작은 첫걸음'을 떼고 나니 그 다음은 쉬웠다. 누가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변하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은 서울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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