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놓고 대통령실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의 진실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7일 "탈북 어민 귀순 의사의 진정성이 결여됐고, 북송은 법과 절차에 따른 결정"이라며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힌 게 발단이다.
대통령실은 5시간여 만에 "탈북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건 궤변이다. 지난 정부 관련자들이 할 일은 정치공세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이 다시 대통령실을 겨냥해 "전임 정부 흠집내기"라며 재반박에 나섰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을 발표했다. 앞서 정 전 실장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배포한 데 대해 조목조목 반박에 나선 것이다.
정 전 실장이 북송된 탈북 어민을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 최 수석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당연히 우리 정부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서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 내렸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송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것도 궤변이다. 그렇다면 자필로 쓴 귀순 의향서는 왜 무시했단 말이냐"라고 반문하면서 "이 사안의 본질은 우리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할 탈북 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직격했다.
최 수석은 "국회 보고도 현장 지휘자의 문자 보고가 언론에 노출되자 마지못해 한 것 아니냐.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왜 정상적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안보실 차장이 국방부 장관도 모르게 영관급 장교의 문자로 보고를 받았느냐"고 지적했다. 북송 당시 JSA 대대장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로 송환 계획을 보고하면서 북송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을 지적한 발언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국정조사 요구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며 "국민 눈과 귀를 잠시 가릴 순 있어도 진실을 영원히 덮어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탈북 어민 강제 북송에 대해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두 번째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3일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 행위"라며 해당 논란에 뛰어들었다. 최 수석의 브리핑도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이 그만큼 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대북 특수정보(SI)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가 SI에만 의존해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해당 어민의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며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북측 해역 표류 사실을 SI를 통해 알고도 장시간 방치해 피살을 못 막았는데, 모순된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전 실장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이 사건과 관련해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자는 주장도 나왔다"며 "새로운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현 정부가 기존의 판단을 어떤 이유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번복했는지도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함께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최 수석도 특검과 국정조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만큼 전·현 정부 간 갈등은 장기화할 조짐이다.
당장 친문 핵심인 윤 의원은 최 수석 브리핑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귀순 의향 여부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는 있었다"면서 "충분한 합동신문 과정을 거쳤으니 그 자료도 정부 손에 있을 것"이라고 재반박에 나섰다. 반면 통일부는 이날 탈북 어민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을 당시 저항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공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