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매도를 증오합니다"… 개미, 민원·시위·협박 총동원

입력
2022.07.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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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늪, 개미 살려!]
<1> 개미의 분노
주가 폭락에 '공매도 금지' 여론 증폭
당국 대책 내놨지만 "여전히 불공정"
"일단 금지하고, 제대로 개선하라"


"나는 공매도를 증오합니다."
주식투자 경력 12년 차 직장인 A씨

주식 투자 12년 차 직장인 A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공매도 금지 기간 중 한때 세 자릿수에 육박했던 수익률이 최근 마이너스(-) 50%까지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일부 차익 실현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4,000만 원 이상 손해를 봤다. 셀트리온·카카오뱅크 등 A씨의 투자 종목들이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되면서다. 투자는 '개인 책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A씨는 그래도 억울하다. 그는 "공매도 때문에 제 주식이 떨어진 것조차 제가 책임져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주식투자자 B씨는 요즘 짬이 날 때마다 금융위원회와 여당 국회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 공매도 금지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아예 연결이 되지 않거나, 기계적인 답변만 듣고 돌아서기를 수차례. B씨는 "외국 공매도 세력 때문에 주가가 더 빨리 떨어지는 것 아니냐"면서 "정부가 규제에 나설 때까지 전화든, 국민제안이든, 뭐든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주가 폭락으로 개인투자자(개미)들의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개미들은 하락의 원흉으로 '공매도'를 지목하고 있다.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된 바는 없다. 그러나 개미들의 심중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들러붙어 있다. "공매도는 개미의 주적이다!"

'주가 떨어져야 돈 번다'=공매도

여기서 잠깐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투자 전략이다. 내 주식이 아닌 빌려온 주식이기에 언젠간 이를 다시 갚아야 한다. 따라서 공매도 이후에는 해당 주식을 다시 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공매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때 주가가 낮아져야 이득을 본다. 이는 개미들이 공매도 제도와 그 투자자들을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의심하는 배경이 된다.

최근 코스피 공매도 비중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이달 월평균(15일 기준) 코스피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비중은 5.35%에 달한다. 지난해 5월 3일 공매도가 부분 재개된 이후 한때 월평균 2.34%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3%포인트 넘게 늘어난 것이다.

공매도 부분 재개가 시작된 이후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5월 3일 종가 기준 3,127.20이었던 코스피 지수는 15일 2,330.98로 무려 796.22포인트(25.4%) 하락했다. 공매도 재개 직후 잠깐 상승했던 코스피는 8월부터 공매도 비중이 증가하면서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물가 상승 충격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외 환경도 하락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공매도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까지 폭락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개미들 생각이다. 이들은 공매도 부분 재개 때도 금융위가 있는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공매도 금지를 반대하는 연구자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는 등 도를 넘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당국, '개미 달래기' 나섰지만… 폭발한 개미들

주가가 속절없이 추락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긴 했다. 금융당국은 이달 1일 금융시장합동점검회를 개최하고 '증시 변동성 완화 조치'를 시행했다. 향후 3개월간 ①증권사의 신용융자 담보비율(140%) 유지 의무를 면제하고 ②기업의 하루 자사주 매수 주문 수량 한도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정작 개미들이 원했던 '공매도 금지' 조치는 빠졌다.

대신 당국 수장들의 '개미 달래기' 행보가 이어졌다. 11일 취임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면 공매도 금지뿐만 아니라 증시안정기금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개미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공매도 금지' 조치가 여전히 나오지 않자 개미들은 폭발했다. 개미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미들을 다 죽일 작정이냐" "2,000선이 무너져야 정신 차릴거냐" 등 당국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다. 실력 행사에도 나섰다. 한투연 회원들은 지난달 말 '전화 인증 게시판'을 신설, 단체로 정부기관과 국회에 공매도 금지 즉각 검토를 촉구하는 민원을 넣고 있다.

개미들이 '공매도 금지' 외치는 이유

개미들은 현재 공매도 금지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다수 개미는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실시됐던 공매도 한시적 금지 조치와 당시 주가 상승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해당 기간 코스피는 무려 1,376.42포인트(77.7%) 상승했다. 10억 원대 투자금을 굴리는 '슈퍼 개미' C씨는 "공매도 세력이 사라지니 주가가 상승한 것"이라며 "이걸 보고도 왜 지금껏 공매도 금지를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공매도 재개 전에 제도 개선을 선행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특히 개미들은 공매도 담보비율이 외국인·기관에 유리하게 설정됐다고 지적했다. 담보비율은 주식을 빌렸을 때 잔고로 유지해야 하는 비율이다. 기관·외국인은 105% 이상, 개인은 140% 이상이다. 기관·외국인, 개인이 각각 1억 원짜리 주식을 빌려 공매도한다면, 기관·외국인은 500만 원을 개인은 4,000만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불공정' 거래가 제기된다. 레버리지 비율을 따지면 기관·외국인은 자기자본의 20배에 달하는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개인은 2.5배밖에 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환 기간에 대한 불만도 꾸준히 제기된다. 기관·외국인은 주식을 빌리는 기간이 무제한인 반면, 개인은 90일에 불과하다고 개미들은 지적했다. 즉 기관·외국인은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만 개인은 손해를 보더라도 주식을 다시 매입해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손질 나선 당국

이에 대해 당국 관계자는 "상환 기간은 공매도 제도의 대표적 오해 중 하나"라며 "불가피할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도 무제한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개인의 공매도 주식 차입 기간을 60일에서 90일로 확대하면서 만기가 도래해도 주식 대여 물량이 모두 소진되지 않았다면 사실상 무기한 추가 연장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담보비율도 바뀔 여지가 있다. 금융위는 개인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현행 140%에서 기관·외국인(105%)과 형평에 맞게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역시 "개인 담보비율을 합리적으로 인하하는 등 공매도 운영 개선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당국의 제도 개선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 공매도 규제를 기관·외국인만큼 풀어줄 게 아니라 반대로 기관·외국인에 대한 규제를 개인처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개인 규제를 풀어봤자 정보·자본력에 있어서 개미들은 기관· 외국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제대로 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현 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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