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대통령 '이메일 사임'… 도피 닷새만에 사직계

입력
2022.07.15 01:34
싱가포르 도착 후 국회의장에게 전달
권한대행 총리, 콜롬보에 통행 금지령

국가 부도 사태 속에 국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공식 사임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지 닷새 만이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 도착한 직후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에게 사임서를 이메일로 보냈다고 국회의장실이 밝혔다. 국회의장은 사임서 원본을 확인하고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마치는 대로 15일 대통령의 사임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공군기를 이용해 몰디브로 간 고타바야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항공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한때 고타바야 대통령의 싱가포르 망명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싱가포르 외교부는 “망명을 신청하지 않았고 망명을 허가 받지도 않았다”며 개인 방문 자격으로 입국했다고 밝혔다. 고타바야 대통령의 최종 목적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싱가포르를 거쳐 사우디 제다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제3의 지역으로 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스리랑카 시민들은 지난 9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고,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을 점령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와 야권의 거센 퇴진 압박에 그날 밤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당시 그는 13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약속한 날까지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아베이와르데나 의장에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임계를 내겠다고 전했다. 스리랑카 정계에서는 그가 대통령 면책 특권을 사용하기 위해 사임계 제출을 미룬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날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반정부 시위대는 국회가 정권 교체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일단 대통령 집무실 등의 점령을 풀기로 했다. 반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대규모 시위가 재발할 것을 우려해 이날 정오부터 15일 오전 5시까지 콜롬보 일대에 통행 금지령을 발동했다.

군과 경찰은 성명을 통해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이 예고되면서 반정부 시위대와 군경이 다시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몰디브로 향하며 자신이 임명한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명했다. 새 총리 역시 지난 9일 대규모 시위 당시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전날 대통령 권한을 발동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시위대는 총리 집무실을 점령하는 등 다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워크레메싱게 총리는 현재 국회에서 여야 지도부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고타바야 대통령이 13일 사임하면 잔여 임기를 맡을 차기 대통령을 20일 의회에서 선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리랑카에서는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면 한 달 내에 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의원 중 한 명을 새 대통령으로 뽑게 돼 있다. 고타바야 대통령의 임기는 2024년까지이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