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홍콩 연예계 아이콘 매염방을 추억하다

입력
2022.07.16 10:30
19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매염방: 디렉터스 컷'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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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언니와 유랑극단에서 먹고 자며 삶을 개척했다. 불우하기만 했던 인생은 스무 살 무렵 변곡점을 맞았다. 홍콩에서 인기 있던 신인 가수 선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승했다. 이후 삶은 추락을 몰랐다. 가수로 배우로 상승을 지속했다. 매염방(메이옌팡)은 20세기 후반 아시아를 호령했던 홍콩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행운과 행복만을 안기진 않았다.

①중년이 기억하는 그 시절 홍콩

매염방(루이스 웡)은 나이답지 않은 원숙함으로 연예계에 빠르게 적응한다. 신인임에도 첫 앨범 녹음을 빠르게 마치고, 어느 무대에 서도 객석을 사로잡는다. 엇비슷한 시기 데뷔한 장국영(테렌스 로)이 그에게 조언을 들으며 스타로 성장할 정도다. 매염방 역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자양분 삼는다. 특히 데뷔 때부터 의상을 담당해준 에디(고천락)와의 사이가 각별하다.

매염방의 활동상은 자연스레 1980년대와 90년대 홍콩 연예계를 반영한다. 매염방이 장국영과 연기 호흡을 맞춘 ‘연지구’(1987) 관련 에피스드가 한 예다. 매염방은 제작자에게 오랜 지우 장국영의 캐스팅을 출연 조건으로 내세운다. 제작자는 처음엔 난색을 표한다. 서로 소속된 제작사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제작사에 소속된 배우만 캐스팅했던 당시 홍콩 영화계의 관행을 알 수 있다. 매염방이 술집에서 마주친 폭력배 출신 제작자에게 험한 일을 당하는 일은 삼합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홍콩 연예계의 어둠을 들춘다.

②유명해서 불우했던 전성기

매염방은 일본을 방문했다가 만난 톱스타 유키 고토(나카지마 아유무ㆍ실제로는 곤도 마사히코)와 사랑에 빠진다. 달콤하기만 했던 인생은 곧 씁쓸하게 변한다. 유명하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다.

유키와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은 후 매염방은 방황한다. 수많은 남자와 짧은 시간들을 보낸다. 유명하기에 불우한 삶에 지쳐간다. 통음에 빠져 정신을 잃기 일쑤다.

매염방은 폭력조직에 쫓기어 태국까지 도피했다가 새 전기를 맞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홍콩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홍콩 연예계 자선사업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③스러진 그녀, 사라지는 홍콩

20세기 홍콩 대중문화에 조금이라도 빠졌던 이라면 매염방의 최후를 안다. 2003년 매염방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자궁경부암 투병에 들어간다. 홍콩에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덮치고, 장국영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후다. 마흔 문턱을 막 넘어선 매염방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매염방은 여전히 홍콩을 걱정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매염방의 전성기는 20세기 중후반 홍콩의 화양연화를 상징한다. 그의 죽음은 중국과 다른 정체성을 지녔던 홍콩의 퇴장을 의미한다. 매염방의 삶이 애절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뷰+포인트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영화 ‘매염방’을 5부작 드라마로 재편집했다. 매염방의 태국 도피 생활 부분 등 느슨하게 전개되는 지점이 있기도 하나 대체로 흥미롭다. 매염방의 활동 초기를 담은 1, 2부, 삶의 마지막 자락을 재현한 5부가 특히 마음을 사로잡는다. 간간이 끼어드는 매염방의 실제 영상을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매염방은 죽기 한 달 전쯤 연 공연에서 활달하고 단호하게 이런 말을 하며 퇴장했다. “바이, 바이!” 한때 홍콩 영화와 음악에 빠졌던 이들이라면 가슴 뻐근해질 장면이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67%) ***한국일보 추천 지수: ★★★(★ 5개 만점, ☆ 반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