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인권 외면' 비판 무릅쓰고 사우디 향한 까닭은

입력
2022.07.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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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일 이스라엘, 사우디 등 중동 순방
유가 급등에 '인권' 가치 접고 화해 손길
사우디 '전략적 모호성' 보이자 노선 변경
이스라엘-사우디 우호 관계 중재도 핵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으로 중동을 찾았다. 이스라엘부터 팔레스타인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에 이르기까지, 3박 4일의 길지 않은 일정 동안 광폭행보를 보이며 중동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스라엘에서는 야이르 라피드 임시 총리와 회담했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도 회동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에 더해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이 참가하는 GCC+3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특히 이번 순방의 하이라이트는 15일 사우디 방문이다. 1940년대 이후 우방의 역사를 간직해왔지만 2018년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급랭한 탓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하는 데다 커지는 이란의 핵 위협과 중국의 ‘중동 러브콜’ 등 민감한 사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동맹국으로서 사우디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자, 미국이 자존심을 굽히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가 급등에 사우디에 화해 손길

사실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순방이 아주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다. 1945년 양국이 우방이 된 이후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서로 ‘안보’와 ‘경제’ 측면을 보완하며 80여 년간 이어져 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5월 사우디를 해외 첫 방문국으로 정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순방지를 이슬람 국가로 정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명분은 시리아와 이라크를 주요 근거지로 활동 중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고,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우디 안보 보장 명분으로 미국산 무기를 판매하는 실익을 챙겼다. 이란을 겨냥해 수천 명의 미군 병력을 사우디에 파병하기도 했다. 2020년 국제 유가 폭락 사태 속에서도 미국과 사우디 정상은 해당 문제를 함께 논의했고, 사우디가 곧바로 증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양국 관계는 점차 틀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뛰쳐나오면서 와해된 이란핵합의(JCPOA)를 바이든 행정부가 복원하려 하자 이란의 ‘앙숙’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 역시 크게 반발했다. 결정적으로 양국의 밀월 관계에 금이 간 시점은 2018년 10월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면서부터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미국의 리더십 부활’과 ‘민주 동맹’을 강조했다. 선거 운동 당시 사우디를 국제사회에서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 1년 6개월간 정상급 교류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등 냉랭한 관계를 이어왔다.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가 ‘자유’와 ‘인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권을 외면한 국가인 사우디와는 화학적 결합이 어렵다고 본 셈이다.

그러나 국가의 가치는 ‘먹고사는 문제’ 앞에 무너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순방 나흘 전인 9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국가를 튼튼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는 게 대통령으로서의 제 임무”라며 “이 일을 위해 사우디를 찾아 상호 이익과 책임에 기초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 확실하게 다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물린 유가 급등으로 물가 안정이 최우선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변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적 선택’에 나섰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사우디는 짧은 시간 내에 원유를 증산할 수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 대란 타개를 위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도 국가인 사우디를 설득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국가 수장이 인권을 외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높아졌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사우디행을 강행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3일 “36세 빈살만 왕세자의 기를 꺾으려던 79세 바이든이 겸손해지는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두 사람의 역전된 관계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중동서 중국 영향력 커질라 견제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방문이 단순한 원유 수급 문제가 아닌 세계적 차원의 구조 변화에서 기인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견제’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중동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자, 미국이 전략적 초점을 아시아와 유럽에서 다시 중동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수년간 미국 행정부는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여기는 신(新)냉전 구도를 그려왔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정책 대응으로 미국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삼각동맹,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안보협의체를 구성했고, 경제적으로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켰다.

한국과는 한미 군사동맹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계하고,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을 연계하는 반도체 동맹, 즉 칩 4(CHIP 4) 동맹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파트너 국가로 초대하는 등 서방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연계해 중국의 패권 추구 저지선을 구성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범위를 중동으로까지 넓히며 미국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이란은 물론 사우디 역시 중국이 브릭스를 확대하기 위해 제안한 ‘브릭스 플러스(+)’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의 외교 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사우디가 브릭스에 참여할 경우 향후 미국의 중동 정책과 에너지 정책에는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과 사우디는 석유 대금 결제시 위안화를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세계 금융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휘가 흔들릴 수 있는 조치다. 미국과의 관계가 흔들리자 사우디가 중국과 한층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이는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는 셈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유화적 노선 변경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우호적 관계 중재 문제 역시 바이든 대통령 이번 순방의 관전 포인트다. 이스라엘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중재로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 고위층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시까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는 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일부에서는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를 지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역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개선을 지지하며 군사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단 한 차례 순방으로 두 나라가 당장 국교를 정상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사우디가 이스라엘 민항기의 영공 통과 허용 등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전향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핵심 어젠다인 △유가 통제 △중국 견제 △이스라엘-사우디 국교 정상화 구축 등을 통해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강한 미국’ 이미지 강화에 나섰다. 특히 한때 등을 돌렸던 사우디를 다시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러시아와 중국, 이란 압박까지 노렸다. “국제 사회에선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오래된 금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