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이 능력인 사회는 발전할 수 있을까?

입력
2022.07.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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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류는 자연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손과 뇌가 발달하였고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을 맞이했다. 곧 대규모 협력망이 형성되고, 인류는 사회법칙의 영향 아래에 놓였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이 협력망은 '상상 속 질서'이고, 근저에 공통신화의 '믿음'이 있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대규모 사회를 가능케 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근본 '믿음'과 질서에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능력주의'가 있다. 지난 반세기 '능력주의' 실천으로 성공을 거뒀으나, 이제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이 문제를 직시하려면, 능력주의의 역학을 규명해야 한다.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는 한국 특유의 능력주의를 '시험능력주의'로 규정한다. 김 교수는 '능력주의' 현실이 사회병리적임을 세밀히 진단하는데, 그 핵심에 '시험'이 자리한다.

시험능력주의에서는 국가가 인정하는 수능 성적이 '능력'이다. 대학 입시는 온 국민의 비상한 국가 행사다. '시험'은 '교육'을 이겼고, '적임자'보다 '시험 능력자'가 우선이다. 입시는 사활을 건 전투가 되고 교육의 장은 전쟁터로 전락하며 불안과 긴장이 학교 문화를 지배한다. 시험을 매개로 앞면에 '지배'가, 뒷면에 '배제'가 자리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학 교수는 "한국 청소년이 공부에 들이는 시간은 놀라운 수준을 넘어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라 평했다. 최근 수능시험 집단유전학 문항의 출제 오류로 수험생들은 해외 석학들에 확인을 구하였고, "터무니없이 어렵고, 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시험능력주의는 우리가 달려온 궤적와 후세대가 달려야 할 궤도 및 종착점을 가늠케 한다. 사실 비슷한 예언은 130년 전에도 있었다. 1894년 조선을 방문한 비숍 여사는 조선 엘리트와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잘못된 자존심을 심어준다. 그리하여 노동을 천시하는 개인주의 자아를 만든다. 공공선을 생각하는 정신을 파괴하고, 사회 신뢰를 파괴하고… (중략)…그 원인은 퇴보적이고 경직된 한국 교육제도이다." 세월의 간극을 무색케 하는 우리의 공통점(無도덕성·無역사성·反노동)이 비숍 여사 글에 담겨있다.

시험능력주의의 부정적 여파는 크고 심하다. 학생은 학교로부터 이탈하고,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능력주의 질서는 믿음으로 유지되고, 사회 구성원의 강력한 '상호주관적' 동의에 의해서만 힘을 발휘한다. 우리 질서가 필연적으로 '믿음'과 불가분 관계라면, 시험능력주의에 대한 개혁은 새로운 능력주의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믿음'이 형성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양동운 법무법인 남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