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전면 개편에 소극적이던 기획재정부가 11일 "중산층 세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에 직장인 과세표준(과표) 상향 등 대폭 손질에 나섰다. 현 소득세 과표·세율은 △1,200만 원 이하 8% △4,600만 원 이하 15% △8,800만 원 이하 24% △1억5,000만 원 이하 35% △3억 원 이하 38% △5억 원 이하 40% △10억 원 이하 42% △10억 원 초과 45% 등 8단계다.
특히 중·저소득층이 대다수인 과표 8,800만 원 이하 구간은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한 채 2008년부터 고정돼 있다. 이런 낡은 소득세 체계 아래선 실질임금은 같아도 명목임금이 오르면 세금 역시 늘어난다. 납세자는 세율 인상 등 분명한 세금 증가 요인이 없었는데도 증세를 당하는 구조다.
소득세 개편 과정에서 쟁점은 ①면세자 확대 ②세수 부족 ③고소득자 포함 여부다. 우선 세율 8% 대상인 과표 1,200만 원 이하 구간을 1,600만 원 이하로 올리는 식의 과표 상향을 하면 세금 감소는 물론이고 면세자 증가도 불가피하다. 소득이 늘어도 기존 과표 구간에 머물러 높은 세율을 적용받지 않고, 세금을 피하는 소득 최저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면세자 비율이 32%에서 48%로 치솟은 2015년 '연말정산 파동 트라우마'가 새겨진 기재부 입장에서 소득세 과표 조정을 부담스러워한 이유다. 2020년 면세자 비율은 37.2%로 연말정산 파동 이전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중·저소득층 과표는 올리되 각종 공제 제도 축소를 통해 현행 면세자 비율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소득세를 깎아주는 다양한 형태의 비과세, 소득·세액공제 제도는 세금을 낼 능력이 있는 납세자를 면세자로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수 감소도 무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종합부동산세 등 감세를 이미 표명한 가운데 세수 규모가 큰 소득세까지 건드렸다간 국정과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 국세 수입 334조 원 가운데 소득세 수입은 부가가치세 등 14개 세목 중 가장 많은 114조 원이다.
관건은 과표 상향폭이다. 세수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표 조정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800만 원 이하 과표가 묶인 2008년과 비교한 올해 물가 상승률 31.7%를 모두 과표에 반영했다간 세수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비슷한 사례도 있다. 정부는 1996년 1,000만 원·4,000만 원·8,000만 원 이하였던 과표를 2008년 1,200만 원·4,600만 원·8,800만 원 이하로 변경할 때 해당 기간 동안의 물가 상승률 40~50%만큼 높이는 대신 20·15·10%씩만 올렸다. 다만 기재부가 세수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여길 경우 과표 상향 대신 공제 확대 등 소득세를 소폭 개편할 가능성도 있다.
과표 상향은 고소득 직장인에 속하는 과표 8,800만 원 초과 구간은 제외하고 8,800만 원 이하 구간만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고소득 직장인까지 감세 효과를 누리는 모든 과표 구간 상향은 윤 대통령 지시와 어긋나서다.
자영업자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소득세 과표 상향은 직장인(근로소득세)은 물론 자영업자(종합소득세)까지 적용받는데, 세원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한 자영업자의 세 부담 완화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이유로 과표 상향을 접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카드 보편화로 소득을 축소 신고하는 자영업자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세 과표를 올리면서 공제 제도도 그대로 유지하면 부당하게 면세를 누리는 사람이 생긴다"며 "방만한 공제 제도 축소가 소득세 개편의 키"라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표 조정은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을 피하기 위해 연봉 1억 원 초반대인 과표 8,800만 원 이하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