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도 이겨내는 '그랭이' 건축술의 힘

입력
2022.07.14 20:00
25면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물체가 사람 손에 의해 인연을 맺기도 한다. 절에서 볼 수 있는 덤벙주초는 매우 특별한 인연이다. 덤벙주초는 자연에 놓인 모양 그대로인 주춧돌로, 이름이 '덤벙거리다'의 '덤벙'에서 왔다. 목수는 자연석의 윗면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나무기둥을 자연석 위에 바로 세우지 못한다. 대신, 지지대와 추를 이용해 기둥을 주춧돌로 쓸 자연석 위에 임시로 세우고, 나무 기둥 밑을 끌로 깎아낸 후 세운다. 이때 쓰이는 것이 V자 모양의 '그랭이'라는 도구로,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다. 아래 그림처럼 목수는 그랭이 한쪽 끝을 자연석 위에 놓고 다른 쪽 끝은 먹물을 묻혀 기둥 옆면을 따라 살살 그으면 주춧돌 윗면의 요철이 기둥에 복사된다. 목수는 이 먹선을 따라 나무기둥을 끌로 깎는데, 주춧돌과 꼭 맞을 때까지 기둥을 깎고 세우기를 반복한다.

잘 된 덤벙주초는 돌과 나무 사이에 빈틈이 없고, 보고 있노라면 목수의 정성과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종종 나무기둥이 주춧돌 속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기둥이 주춧돌 위에 놓여 있다고 알고 있어도 그렇다! 이 착시의 원인은 우리 눈이 나무기둥 모서리의 직선을 보고, 밑둥도 반듯할 것이라고 추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춧돌 속에 반듯한 밑둥이 박혀있다고 보게 된다. 한편 정평주초는 돌멩이를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깎은 주춧돌로, 윗면이 반듯하다. 정평주초에서 나무기둥이 박혀있다는 인상이 훨씬 덜하다. 덤벙주초는 민가나 사찰의 부속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정평주초는 궁궐의 건물이나 유명 사찰의 대웅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정평주초를 덤벙주초보다 더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평가했던 것 같다. 그때는 돌멩이를 깨트리지 않고 대칭으로 깎는 일이 나무 밑둥을 깎는 일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고, 이런 제작의 어려움도 정평주초를 더 귀하게 보게 했을 것이다.

나는 그랭이의 실물을 보려고 몇 번 수소문했지만 구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콤파스 모양의 철제 '스크라이버'라는 서양식 도구가 쓰인다고 한다. 돌담을 쌓을 때도 덤벙주초와 비슷한 방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아랫돌을 그대로 밑에 두고 윗돌의 아랫 부분을 깎아 아랫돌 위에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담을 쌓으면 지진도 견딜 정도로 튼튼하다. 그랭이 공법의 돌담은 고구려 시대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돌과 바위가 많은 고구려의 환경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랭이 공법을 적용한 돌담은 경주 불국사나 구례 화엄사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면, 덤벙주초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절에서 보수되거나 새로 건축되는 건물에 대부분 정평주초가 쓰이고, 덤벙주초는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기계로 돌멩이를 깎는 일이 나무를 깎는 일보다 더 쉬워졌기 때문일까? 자연석의 윗면을 스캔하고 나무기둥의 밑둥을 알아서 조각해주는 인공지능 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덤벙주초 만들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랭이는 처음 만나는 돌멩이와 나무의 인연을 맺어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에게 꼭 맞는 사람이나 자리를 이어주는 그랭이와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