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아침 일찍 나와도 해는 뜨겁고 역에 도착하니 땀이 흐른다. 바로 열차가 도착해 탑승하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온다. 게다가 빈자리까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려는 순간, 한 사람이 지하철 안으로 들어온다. 큰 목소리와 함께.
"아니~걔는 센스가 없어! 완전 무데뽀라니까"라 말하며 통화하고 있는 이는 화가 잔뜩 난 상태. 다른 승객들이 일제히 전화하는 이를 힐끔 쳐다본다.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지만, 괜히 해코지당할까 싶어 누구도 섣불리 제지하지 않는다. 주섬주섬 이어폰을 찾고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 "센스는 당신이 더 없는 것 같은데?" 지하철 승객 안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말이 옆자리 승객의 입에서 나왔다. 소심한 나는 옆자리 승객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맞아요, 맞아."
환승역에 도착했다.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열차에 겨우 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 보면서 갈 수 있는 건 꿈꿀 수 없는 일.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면서 신문 기사를 본다. 한 대학의 공지문을 읽는다. 지난달 한 대학생이 현장실습 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야 학교에서 재발 방지대책을 올렸나 보다.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어른들의 강압에 내몰려 일하다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의 소식이 자꾸 마음에 툭 걸린다. '학교는 무작정 실습만 보내지 말고 애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실습 업체들도, 제대로 교육도 안 해주고 무조건 싼 값에 노동력을 쓸 생각만 하는 거 너무 치졸하지 않나?', '왜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지?'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삼킨다. 거리를 두고, 쉽게 분노만 한다. 목소리를 내는 건 용기가 필요한데 늘 쉬운 쪽만 택하며 방관자가 된다.
한바탕 승객이 빠져나간 지하철 안, 빈자리에 냉큼 앉는다. 옆자리에는 어린이가 앉아 있는데, 저 멀리 또래의 한 아이가 오더니 앉아있던 어린이에게 말을 건다. "친구야, 나 힘들어서 그런데 자리 좀 양보해줘"라고 말을 건네 아이의 엄마는 당황하며 앉아있던 아이의 엄마에게 사과한다.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아이의 말이 마냥 귀여워, 얼른 일어나 대신 내 자리를 양보해준다.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있는 두 어린이와 엄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매일 출근길에서도, 휴대폰 속 타인의 삶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일들은 끊이질 않지만 삼키는 쪽을 택한다. 몇 번의 껄끄러운 상황을 겪다 보니 예상치 못한 위협이나 갈등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이에게 무례하다고 직접 말하는 옆자리 승객과 양보해달라고 부탁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통쾌하고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우연히 옆에 앉았던 두 사람 덕에 활자로 작은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는다. 바뀌는 게 없더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지면, 목소리가 조금은 더 커지지 않을까? 실습 중 사망한 학생의 소식과 반복되는 현장실습의 문제점이 담긴 신문 기사의 내용을 캡처해 SNS에 올린다. 먼저 목소리 낸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리트윗한다. 내릴 역에 도착했다. 땀도 식었고,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운 상태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