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보리스 존슨’을 뽑기 위한 영국 차기 총리 경선의 막이 올랐다.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공관) 주인이 되기 위해 집권 보수당에서 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표심을 좌우하는 쟁점은 감세(減稅) 정책이 될 전망이다. 경선이 초반부터 과열되면서 당이 분열할 조짐도 있다.
12일(현지시간) BBC방송 등에 따르면, 보수당은 경선 후보자를 8명으로 압축했다. 이변은 없었다. 유력 주자인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을 비롯,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먼 잉글랜드·웨일스 법무장관, 케미 배디너크 전 여성평등장관, 페니 모돈트 무역정책장관, 톰 투겐드하트 하원 외교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경선 출마 조건인 ‘동료 의원 20명 이상 지지’를 모두 받아냈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 4명으로 동수이고, 출신지도 영국뿐 아니라 이라크, 인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매트 굿윈 영국 켄트대 정치학 교수는 더타임스에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다양한 총리 경쟁”이라고 설명했다. 전·현직 재무·외교 장관들이 맞붙은 것도 이례적 상황이다.
총리 경선 절차는 길고 복잡하다. 13일 1차 투표에서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 358명 중 30명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한 후보가 탈락한 것을 시작으로, 가장 득표율이 낮은 후보자가 차례로 떨어져나가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경선은 마지막 두 명이 남을 때까지 치러진다. ‘최후의 2인’이 가려지면 보수당 16만 당원의 우편 투표로 9월 5일 최종 승자가 결정된다.
선거 쟁점은 감세다. 수낙 전 장관을 제외한 모든 후보들은 '경제 소방수'를 자처하며 △법인세율 인하 △소득세 성격의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 인상 취소 △연료세 인하 △각종 규제 철폐 등 세금 감면 공약을 내놨다. ‘언제, 얼마나 내리느냐’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세율을 낮추면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9.1%)을 기록한 물가상승률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공포 속에서, 가장 확실한 득표 방법은 세금 감면을 통한 가계 부담 경감이라고 여긴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러스 장관의 감세 규모는 최대 340억 파운드, 자하위 장관 320억 파운드, 헌트 전 장관 200파운드, 투겐다트 위원장은 180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자체 추산했다.
이는 현 정부의 증세 정책과 거꾸로 가는 행보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세율을 꾸준히 올려왔다. 올해 4월에는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을 1.25%포인트 인상했고, 현행 19%인 법인세율도 내년까지 25%로 대폭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영국의 세금 부담은 194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상태다. 누가 정권을 잡든, ‘존슨호’ 구상을 모두 후퇴시키겠다는 의미다.
재무장관으로 존슨 정부에서 세율 인상을 진두지휘해 온 수낙 전 장관도 조심스럽게 감세 경쟁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아직 구체적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날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보수당 상징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주장해온 영국식 신자유주의, 이른바 ‘대처리즘’을 소환하며 세금 감면 방침을 언급했다. 그는 “감세에 보다 책임감 있게 접근할 것”이라며 “대처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레이스 초반부터 비방과 흑색선전도 난무하고 있다. 트러스 장관을 지지하는 나딘 도리스 문화부 장관은 수낙 전 장관을 향해 “더러운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선두를 달리는 수낙 전 장관 측이 최종 경선에서 상대적으로 지지율 열세인 헌트 전 장관과 만날 수 있도록 조작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첫 번째 관문(20명 지지 확보) 당시 헌트 캠프에 표를 빌려줬다고도 주장했다.
가족의 탈세, 성소수자에 대한 과거 문제성 발언은 물론이고 불륜 등 사생활에 대한 난타가 이어지면서 보수당이 흔들리고 있다. 가디언은 “경쟁이 정당 분열을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