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대구 법무빌딩 방화 사건은 피의자 천모씨가 올해 1월부터 휘발유와 흉기를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확인됐다. 천씨가 현장에서 숨져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경찰은 건물 내 비상구를 사무실 벽으로 가로 막아 대피를 어렵게 한 건물주 등을 불구속 입건했다.
13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천씨 주거지 등에서 확보한 컴퓨터에선 지난 1월 "휘발유와 흉기를 마련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남긴 글이 발견됐다. 천씨는 구체적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어보자", "휘발유와 식칼은 오래전에 구입했다"는 글을 남겼다. 경찰은 이에 천씨가 글을 쓴 올해 1월 이전까지 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했다. 하지만 휘발유와 흉기를 구입한 장소와 정확한 구매 시점을 파악하진 못했다.
천씨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컴퓨터 등에 상대편 변호사를 원망하는 내용의 글을 다수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6, 7월쯤 자신과 관련된 소송의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협박성 전화를 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해당 변호사는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화재 현장 감식 결과, 사건 당일 천씨가 건물 복도에 먼저 휘발유를 뿌린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불을 질러 대피를 어렵게 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천씨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방화 사건을 종결했다. 대신 불이 난 건물의 건물주와 관리인 2명, 사설 소방점검업체 관계자 2명을 소방시설법과 건축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평소 비상구로 향하는 통로와 유도등을 사무실 벽으로 가로막은 채 건물을 사용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이들의 관리 소홀로 사건 당일 대피에 어려움이 있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정현욱 대구경찰청 강력계장은 "직접적 피해 원인은 방화이지만 소방시설 관리 소홀이 피해 확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건물관리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입건했다"고 말했다.
주상복합아파트 개발 사업과 관련해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한 천씨는 지난달 9일 오전 10시 55분쯤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법무빌딩 2층에 있는 소송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고의로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사무실 내 변호사 1명과 직원 5명 등 6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고, 천씨도 현장에서 숨졌다. 또 같은 건물에 있던 입주자 등 50명이 연기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