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의 전쟁’에 나선 한국은행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물가 안정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온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내수 경기가 얼어붙어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13일 한은은 빅스텝에 나선 이유로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기대인플레이션마저 크게 높아지고 있다.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하는 걸 막으려면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세를 끌어내리고, 소비자들이 보는 향후 1년간 물가 전망(기대인플레이션) 상승폭을 눌러 추가 물가 상승 차단에 나선 것이다.
이미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3.9%)은 약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물가가 더 오를 거란 기대심리가 한껏 부푼 상황이다. 물가가 계속 상승한다고 보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비교적 수월하게 올릴 수 있다. 고물가에 따른 임금 인상 비용을 물건 값에 쉽게 전가하고, 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다시 끌어올리며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은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등 외부 요인이 주도하고 있어 금리 인상으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대외 요인으로 크게 뛴 물가가 다시 내려오긴 당분간 힘들 것”이라며 “금리 인상마저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물가 불안 심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금리를 올리면 물가 상승률은 내려간다는 게 경제학의 기본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장기화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어 장담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상 효과는 미지수지만, 그에 따른 충격은 확실하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생산·투자부터 줄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시 대기업의 대출이자 부담은 1조1,000억 원, 중소기업은 2조8,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가구 역시 1,753조 원에 달하는 대출을 끌어안고 있어 소비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재유행 등 내수 경기 하강을 불러올 변수도 여전하다.
미국·유럽의 경기 둔화로 수출이 더 이상 경제 성장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마저 쪼그라들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밀려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치솟은 물가를 감안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정부 전망(3.1→2.6%)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등 한계 기업 등이 속출할 우려가 커진 만큼 급격한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해선 이들에 대한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 교수는 “빅스텝 직격탄을 맞게 된 취약 기업·가구에 대한 충격 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