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앞에서 제가 늘 죄인입니다.”
대구에 사는 유경희(48·가명)씨는 5년 8개월 동안 전 남편에게서 양육비 6,300만 원을 받지 못 했다. 한 번은 병원에 입원한 큰 딸이 아빠에게 “병원비 좀 보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제발 너희끼리 알아서 살아라”였다. 충격을 받은 딸은 자해까지 시도했다.
양육비를 떼먹는 부모를 상대로 출국금지나 실명 공개, 운전면허 정지 등의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이 시행(2021년 7월 13일)된 지 1년이 지났다.
그간 양육비 미지급자 13명의 명단을 공개했고, 51명과 114명에 대해선 각각 출국금지, 면허정지를 요청했다. 이른바 ‘나쁜 부모’를 제재하는 법적 조치가 일부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 불과하다. 여전히 적지 않은 양육자들이 개정법의 실효성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까다로운 ‘감치명령’ 절차는 양육비 이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감치명령이 내려져야 출국금지든 면허정지든 후속 제재에 들어갈 수 있어서다. 양육비 지급 명령을 3개월간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은 비(非)양육자를 상대로 감치(구치소 등에 가두는 행위) 절차에 들어간다. 감치는 인신을 구속하는 행위라 이행의무위반, 심문기일 통지서 등이 대상자에게 직접 전달돼야 한다.
비양육자들은 바로 이 점을 악용한다. 서류만 수령하지 않으면 감치명령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 ‘꼼수’가 위장전입이다. 물론 법원이 송달 서류를 보관했다가 당사자가 나타나면 바로 교부할 뜻을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는 ‘공시송달’ 제도가 있긴 하다. 다만 공시송달을 실제 서류 수령과 동일하게 취급할지는 재판부 재량이다.
유씨 남편 A씨도 지난해 11월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자취를 감췄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네 차례나 서류를 보냈지만 수령인이 없어 전부 반송됐다. 여기에 재판부는 5월 공시송달 만으로는 감치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결정까지 내려 유씨를 더욱 좌절케 했다. 그는 “법이 바뀌었다더니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라고 토로했다. 감치명령 문턱 자체가 높다 보니 면허정지 신청 같은 후속조치는 꿈도 꾸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개정법 시행 후 1년간 감치 절차가 시작된 488건 중 30%가 넘는 161건이 비양육자의 거주지 불분명 등을 이유로 기각됐다.
천신만고 끝에 감치명령을 끌어내도 ‘산 넘어 산’이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편의를 봐주는 예외 조항이 너무 많은 탓이다. 가령 운전면허 정지는 생계유지 목적이면 예외가 인정되고, 실명 공개도 채무자가 파산선고 등을 받을 경우 제외된다. 출국금지 역시 양육비가 5,000만 원 넘게 밀려야만 대상이다.
안예슬(29·가명)씨는 1년 소송 끝에 지난달 겨우 감치명령을 받아내 전 남편 B씨에 대한 면허정지 신청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최근 B씨가 배달용 오토바이를 샀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씨는 “생계유지 예외 대상으로 빠져나가려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이마저도 감치명령은 선고 후 6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진다. 양육자들은 고통스러운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개선 요구도 결국 감치명령 절차 간소화에 모아진다. 남성욱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는 “감치명령이 인용, 집행될 때까지 양육자 홀로 모든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도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부대표는 “공시송달이 일정 횟수(3회) 시행되면 무조건 감치명령을 내리는 ‘특별 공시송달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양육비 선지급제’ 등 정부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미진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유럽 등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양육비는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와 직결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선지급제를 공약했지만 국정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