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존 볼턴이 12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해외 쿠데타에 조력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미국 국무부나 정보기관 등이 적극적으로 대외 개입에 나섰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지만, 그 당사자인 전직 관료가 다른 국가의 정부 전복 시도에 관여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은 이례적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볼턴은 이날 CNN방송 '더 리드'에 출연해 진행자 제이크 태퍼와의 인터뷰 도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 의사당 침탈 사건 때 계획적 쿠데타를 기도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논거로 "이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쿠데타 계획을 도운 적이 있는 입장에서 보면 쿠데타에는 굉장히 많은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진행자인 태퍼가 구체적으로 볼턴이 어디에 개입했는지를 묻자 볼턴은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면서 "성공하진 못했다. 반대파가 불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뒤집으려고 했고 실패했다"면서 자신이 '쿠데타'로 의미하는 바가 2019년 베네수엘라 위기임을 암시했다. 태퍼는 "당신이 말하지 않은 '다른 것'(베네수엘라가 아닌)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압박했고 볼턴은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이 인터뷰가 알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그가 실토했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일한 오마르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등은 "볼턴이 과거에도 해외 정권 전복에 개입한 역사가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나섰다. 볼턴이 국무부에서 일하던 시기인 2004년 아이티 쿠데타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며, 볼턴 자신은 이라크나 이란 등의 반미 성향 정권을 전복해야 한다고 수시로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존 볼턴은 미국 외교가에서도 맹렬한 매파로 통한다. 그는 백악관을 나온 후 2020년 발간한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를 지지하도록 유도했으나,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과이도를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재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대화를 선호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과이도의 마두로 정부 전복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베네수엘라 국민 여론도 과이도를 옹호하지 않았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쿠데타 지원 실패는 오히려 베네수엘라 야권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볼턴의 오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볼턴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도록 조언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볼턴이 물러난 후 트럼프는 '노딜'의 책임을 볼턴에게 돌렸고 볼턴 역시 회고록 등을 통해 트럼프의 정치적 무능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볼턴은 현재는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쿠데타를 의도적으로 계획할 만큼 능력이 없기 때문에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은 쿠데타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