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독자를 다음 문장, 다음 페이지로 끌고 가기에 충분한 소설의 첫 문장이다. 올해 제2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성봉의 '카지노 베이비' 얘기다. 카지노에 빠진 부모에게서 태어나 전당포에 버려진 아이(하늘)는 열 살 즈음이 되도록 전당포 사장을 할머니로, 할머니의 딸을 엄마로 부르며 살아간다. 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은 아이와 과거를 함구하는 할머니의 긴장 관계에서 시작한 서사는, 이들이 사는 도시 '지음' 전체로 확장된다. 탄광촌에서 카지노 마을로 변신한 지음 속 여러 인물들의 삶 속으로.
작품의 중심은 이 공간이다. '지음'은 강원도 정선 사북과 고한의 현실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탄생한 마을이다. 강성봉 작가는 14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어린 시절을 사북 지역에서 보냈고 청년 시절에도 카지노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그 기억이 '지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덧칠한 그림처럼 탄광촌의 옛 흔적 위로 유흥가가 보이는 이상한 풍경에서 '지음'의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침체된 옛 도시인데 도박에 대한 활기는 타오르는, 그 억지스러움이 작가의 상상력을 건드린 것이다. '지음'에는 사북 안에 갇히지 않고 "멀어지고 싶다"는 의미도 담겼다.
소설은 탄광이 문을 닫고 카지노가 들어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을 버텨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조명한다. 결말이 희망을 전한다고 본 여러 심사위원들의 평과는 달리 저자 본인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썼던 파일명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글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고 돌아봤다. 또 "부침을 많이 겪은 지역에서 직업을 바꿔가며 어쨌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생명력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의 온기에는 화자인 '하늘'의 역할도 크다.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처럼 아이의 입을 거치면 모진 현실이 다소 부드럽게 표현되면서 독자에게 편안함을 준다. 순수한 아이의 시선이 웃음을 주기도 하고 인물에 대한 애정도를 높이는 효과도 냈다. 저자는 "초안은 아이가 '지음'을, 어른이 카지노 '랜드'를 설명하는 식의 2인 화자 구조였지만 수정했다"고 했다. "어른 화자 부분이 '노잼'(재미가 없다는 뜻)"이라는, 어린이책 편집자 출신인 아내의 지적 덕분이다.
유사 가족 안에서 길러진 아이의 따뜻한 성장기의 면모도 보인다. 전당포에 맡겨진 담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전당포 운영 원칙을 설명하는 장면은 진한 가족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맡을 물건은 맡고, 못 맡을 물건은 안 맡는다…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진짜로 어려운 일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는 구절은 중의적인 어투로 할머니가 하늘에게 사랑을 전하는 순간이다. 카지노가 무너지는 재난 상황에 몸을 던져 하늘을 찾아낸 전당포 가족들의 모습도 그렇다.
저자는 13년차 편집자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는 좋아했지만 출판사 일을 하다 보니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더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번 수상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올랐다. '지음'이란 공간의 세계관을 가진 소설들을 쭉 내보고 싶은 바람도 내비쳤다. 카지노와 시장 등이 더 다양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배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를 화자로 두면서 소화하지 못한 얘기들을 살려 쓰거나, 조연처럼 나온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물음엔 가장 먼저 "땅에 발을 붙인, 그리고 문턱이 낮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이하게 쓰진 않겠지요. 인간과 삶, 사회 그 진실을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면서도 여러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