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에 새겨진 승려와 호랑이의 투쟁

입력
2022.07.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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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호랑이다. 놀랍게도 호랑이가 들어간 속담은 무려 130여 개나 된다. 이 정도면 동물을 넘어 우리나라 속담계의 지존이자, 대주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건, 우리 조상들은 범과 호랑이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자로 호랑이는 '범 호(虎)'다. 한자의 뜻과 음은 우리말과 중국말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마치 tiger를 '범+타이거'로 읽는 방식이다. 즉 범은 한자가 들어오기 전 우리말이고, 중국말은 호라는 뜻이다.

참고로 '망고'처럼 전혀 없던 게 새로 들어오면 당연히 우리말이 없다. '연꽃 연(蓮)' 같은 경우다. 연꽃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파된다. 이 때문에 연꽃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범은 호랑이뿐만 아니라, 표범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명칭이다. 실제로 우리의 대표적인 민화인 '까치호랑이(작호도)' 그림을 보면, '호랑이'라는 제목과 달리 상당수는 표범이 등장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호랑이는 수박처럼 줄무늬를 가지지만, 표범은 동글동글한 땡땡이 패션을 걸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오늘날까지 범띠라는 표현을 호랑이띠와 함께 사용한다. 범과 호랑이의 모호성이 수천 년 지난 오늘날까지 유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행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호랑이가 아닌 범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가운 인상을 준다.

예전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호환·마마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모든 비디오 테이프에는 '불법 비디오 복제는 예전의 호환·마마급'이라는 공익광고가 실려 있었다.

여기에서의 호환+마마가 바로 '호랑이에 의한 죽음'과 '천연두'다. 전염성이 강한 천연두보다 호환이 앞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호환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약 70%나 되며, 그것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과 같이 길게 연결되어 있다. 호랑이로서는 KTX가 전국에 깔려 있는 셈이다.

속담이 130여 개나 만들어질 정도로 민가까지 공포에 떨게 한 호환. 이는 산에 터를 잡은 사찰에 훨씬 농도 깊은 위협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내가 사는 평창 오대산에의 지장암은 최근 이전했는데, 승려가 20세기 초 호랑이에게 습격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살기 어려우므로 필요에 의해 절이 옮겨지게 된다.

이런 사건을 대변하는 속담이 '새벽 호랑이는 중이나 개를 가리지 않는다'이다.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는 계속해서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이 손쉬운 먹잇감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옛사람들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은 '창귀'가 되어 사후에도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의 반복되는 살인을 창귀라는 설정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찰에는 호환을 대비하기 위한 방어시설이 여럿 존재한다. 한국 산사의 특징인 일주문부터 대웅전까지의 거리가 먼 것은 인적을 남겨 호랑이의 피해를 줄이려는 의도다. 또 한국 사찰에서는 유독 새벽에 큰소리로 세상을 깨우는 도량석을 하는데, 이 역시 근처의 호랑이를 소리로 물리치려는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정료대(불우리)라는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불침번을 섰는데, 여기에도 일부는 호환을 피하기 위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렇게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해도 호환은 근절하기 어려웠다. 해서 산신각과 삼성각에 산신을 모시고, 산신에게 호랑이를 컨트롤하게 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한다. 즉 산사에는 승려들과 호랑이 사이의 길고 긴 투쟁의 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