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상괭이 뱃속엔 새끼가… '미소천사' 토종 고래의 안타까운 죽음 [르포]

입력
2022.07.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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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고래 상괭이 부검 현장 동행
사인은 혼획으로 인한 질식사 추정
개체 수 급감하고 있는 상괭이 위해
탈출망 보급확대 등  방법 모색해야



"너무 건강한 데다 임신까지 한 개체가 죽어 더 안타깝습니다."
이영란 오산대 교수(해양동물 수의사)

부검대 위에 올려진 토종 고래 상괭이의 덩치는 생각보다 작았다. 몸길이 170㎝에 몸둘레 117.5㎝, 성인과 비슷했다. 큰 상처 없는 매끈한 몸에 사연이 있는 듯한 까만 눈, 살짝 벌어진 입속 가지런한 이빨, 두 개의 젖까지.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상괭이를 인어라고 기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1일 오후 1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식품 해양생물부검연구시설에는 대학 소속 수의사와 연구원, 수의대생 20여 명이 모였다. 혼획(허가 어업의 조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것), 좌초∙표류 등으로 사망한 상괭이 8마리의 부검을 위해서다.

이날 시작된 부검은 15일까지 계속된다. 해양 수의사인 이영란 오산대 교수의 총괄 아래 충북대, 인하대, 한양대 연구원들은 상괭이 사인을 밝히는 데서 나아가 체내 미세플라스틱이나 유기오염물질 잔류 여부를 분석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산대가 지난해 해양수산부로부터 서남해권 상괭이 부검과제를 따내면서 이뤄졌다.

세 번의 임신 흔적... 뱃속엔 작은 새끼

부검대에 오른 상괭이는 이달 5일 경남 통영시에서 좌초된 채 발견된 개체다. 이 교수는 배가 불룩 나와있는 외관을 보자마자 임신을 추정했다. 유선을 누르니 뽀얀 젖이 흘러나왔다. 등 부분이 통통한 거로 봐선 죽기 전까지 먹이도 잘 먹은 상태였다. 이 교수는 신체 측정과 피부병, 기생충 유무 등 전반적인 외관검사를 마친 뒤 상괭이 사체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후 김선민 충북대 수의사 등이 참여해 연구를 위한 근육, 지방 조직을 떼어냈다.

"불편하면 토하고 와도 돼요." 이 교수가 부검 장면을 처음 본 학생들에게 건넨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냄새도 심해졌다. 태아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한 왼쪽 난소에서는 임신의 흔적인 백체를 세 개나 발견했다. 세 번의 임신경험이 있다는 의미였다.

상괭이는 성체가 된 약 4~5세 이후 임신이 가능하고, 임신 기간이 약 10개월임을 고려하면 이 엄마 상괭이는 적어도 9세 이상이라는 걸 추정할 수 있었다. 자궁 속에는 손가락 마디 크기의 태아가 발견됐다. 작은 크기였지만 머리, 꼬리, 갈비뼈가 보였다. 부검실 내에는 안타까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상괭이 사망 원인은 혼획으로 인한 질식사

가장 중요한 사인 규명의 시간. 이 교수는 "기도에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며 "그물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 속에는 상괭이가 좋아하는 먹이인 새우, 오징어, 생선이 가득했다. 상괭이 평균 수명이 20년 이상임을 감안하면 혼획만 되지 않았어도 뱃속 새끼를 낳고 최소 10년은 살 수 있었다.

서해와 남해 연안에 주로 사는 상괭이는 1973년 체결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사이테스∙CITES)' 부속서 1급에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2017년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상괭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케이블 채널 ENA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상괭이를 "얼굴 모양이 꼭 웃는 것 같아 귀엽다"고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실제 상괭이는 '웃는 돌고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년 800마리 이상 희생된다지만 제대로 집계조차 안 돼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2003년 6만 마리였던 상괭이는 2011년 1만3,000마리로 급격히 줄었다. 해수부는 뒤늦게 2016년 말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포획·채취·유통·보관·훼손을 금지했다.

고래연구센터가 해경을 통해 집계한 결과 2015년부터 6년간 폐사한 상괭이(서해 기준)는 5,087마리로 매년 800여 마리가 넘는다. 하지만 상괭이가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기 이전 식용으로 유통된 개체 수를 역추적해보면 실제 한 해 최소 5,000~7,000마리가 죽는다는 추정도 있다.


실제 집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어민들이 해경 신고를 꺼려하는 게 크다. 이날 부검 이후 열린 어민 경청회에 참가한 한 어민은 "되팔지도 못하는데 굳이 상괭이를 잡을 이유가 없다"면서도 "해경에 신고하면 불법포획 여부를 조사받고, 조서까지 써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고 토로했다.

어민들이 바다에 버린 상괭이 사체는 해안으로 떠밀려 와 발견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기본적으로 상괭이 몇 마리가 죽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괭이를 죽음으로 모는 안강망... 다양한 해법 모색해야

상괭이를 죽음으로 모는 건 수산동물이 조류에 의해 강제로 자루 형태의 그물 안으로 밀려들어가게 해 잡는 어구인 안강망이다. 이 어구에 휩쓸려간 상괭이가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질식사하는 것이다. 상괭이는 고래류 가운데서도 몸 크기가 가장 작아 가장 많이 혼획된다.

상괭이 혼획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안강망에 갇힌 상괭이가 유도망을 따라 올라간 뒤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망을 개발하고 어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어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어민들은 탈출망이 실제 상괭이 보호에 효과가 없는 데다 어획량이 감소한다고 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탈출망에 회의적인 어민들과 상호작용을 늘리고 설득하는 한편 상괭이 희생을 줄일 다각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외에선 그물에 돌고래회피용 음파발신장치 핑어(pinger)를 설치하거나 빛에 민감한 돌고래들이 그물을 피해 가도록 발광다이오드(LED)를 달아 효과를 보고 있는데, 국내에선 아직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해양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상괭이의 삶은 곧 인간과 직결되어 있다"며 "지금이라도 상괭이 기초 조사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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