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된 남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군 시설을 잇달아 파괴하고, 대규모 군대 집결도 지시했다. 흑해 봉쇄를 뚫어 곡물 수출 통로를 확보하는 동시에 향후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다.
최근 동부 전선에서 우위를 점한 러시아도 총진군을 준비하고 있다. 공포심을 심어주고자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도 서슴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식량 위기 해소를 위해 양국 간 중재에 나섰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크림반도와 맞닿은 남부 헤르손주(州) 마을 노바 카호우카에 위치한 러시아군 탄약고에 11일(현지시간) 장거리포 공격을 단행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화염이 밤하늘을 시뻘겋게 뒤덮을 정도로 폭발 규모가 상당하다. 세르히 클란 헤르손 지역 의원은 “러시아군 탄약고 한 곳을 없앴다”며 주민들에게 “폭발 장소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같은 날 헤르손에서 동쪽으로 300㎞ 떨어진 자포리자주 토크마크에 있는 러시아군 탄약고도 공습했다고 밝혔다. 서방에서 지원받은 장거리 미사일이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최신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를 강화하자 러시아군은 군수품 부지를 헤르손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라덴스크로 긴급히 옮겼다”며 “헤르손에선 시가전에도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수복 작전을 선언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 무기로 무장한 군인 100만 명을 확충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 경제에 중요한 흑해 연안을 탈환하라고 지시했다”며 “우리에게 왜 무기기 필요한지, 왜 이러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하는 서한을 우방국에 보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최우선 탈환 목표로 남부 지역을 택한 데는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을 재개해 경제적 타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실리적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여전히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다. 동부 돈바스에서는 루한스크주를 완전히 점령한 데 이어 도네츠크주 진군을 준비 중이다. 군대 재편성 및 재보급을 하느라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오히려 민간인 피해는 늘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고 거주지 등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탓이다. 이날도 도네츠크주와 멀지 않은 북동부 하르키우에 러시아군 로켓포가 타이어 수리점과 아파트 등 민간 시설로 날아들어 최소 6명이 숨졌다. 대학입학증명서를 받으러 가던 아버지와 아들도 사망했다. 10일 폭격을 당한 도네츠크주 차시우 야르 마을 아파트에선 시신이 추가로 발견돼 사망자가 33명으로 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할 때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동부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과 남부 점령지에만 적용됐던 법을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수중에 넣겠다는 야심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흑해를 두고는 양측 모두 협상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이 기아 위기에 놓인 빈국에 하루 빨리 공급돼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과 잇달아 통화를 하고 흑해 항로 개방과 곡물 수출 재개 등을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과는 조만간 정상회담도 진행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같은 날 곡물 수출 문제에 대해 터키 정상과 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은 합의를 향한 진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