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면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수사팀 증원과 국가정보원·국방부 관계자 조사 직후 신속하게 자료 확보에 나서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는 이날 오후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6일 국정원이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등을 대검찰청에 고발한 지 일주일 만이다.
이날 국정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2005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사건(2014년)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단행됐다. 다만 수사팀이 법원에서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한 뒤 국정원이 자료를 제출하는 '소프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국정원이 이미 자체 조사를 거쳐 이례적으로 전직 수장들을 고발했기 때문에, 과거 압수수색 때처럼 국정원 서버에 접근하거나 자료를 직접 검색하지는 않았다.
박지원 전 원장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격될 당시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첩보 보고서 등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를 받는다. 서훈 전 원장은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국정원 합동 조사를 조기 종료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로 고발당했다. 검찰은 국정원 서버에 남아 있는 정보 생산·삭제 기록과 직원들이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등 내부 자료를 토대로 고발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강제수사 돌입 전에 이미 본격 수사를 위한 예열작업에 들어갔다. 대검은 수사력 강화 차원에서 지난 11일 수사팀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와 공공수사3부에 각각 검사 2명과 검사 1명을 파견하는 등 수사 인력을 보강했다.
수사팀은 이와 함께 국정원·국방부 관계자들에 대한 기초 조사도 상당 부분 진행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공공수사1부는 지난 11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대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 과장은 이대준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기존 국방부 입장을 뒤집는 언론 브리핑을 했다. 검찰은 윤 과장을 상대로 국방부 조사 결과가 뒤집어진 배경과 근거, 사건 발생 당시 국방부 조치 등을 확인했다. 수사팀은 최근 국정원 관계자들도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박 전 원장이 첩보 보고서를 삭제하고 지시한 정황을 조사했다.
검찰 주변에선 수사팀이 이날 국정원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조만간 국방부, 해양경찰청, 대통령기록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단행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압수수색을 통해 의미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쪽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