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 수백 대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미국 정부가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신냉전 체제의 한 축인 러시아·중국의 반미(反美) 연합에 이란이 가세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들 나라는 오랜 기간 반미노선을 걸었지만, 이란의 경우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협상 결과에 따라 방향을 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 정부는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UAV)와 같은 드론 수백 대를 러시아에 이른 시일 내에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이르면 이달 중 이란이 러시아군에 관련 훈련을 시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올해 초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한 예멘 후티 반군에도 유사한 UAV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이번 폭로는 이란이 러시아와 가까워져 반미 연합의 새 축으로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핵합의 복원을 논의 중인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이 정보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을 제공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국이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동맹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중동 순방을 위해 출국했으며, 그가 정상회담을 하게 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는 자국 이익을 이유로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날 공개된 정보는 '이란은 러시아를 적극 돕고 있는데, 이란의 경쟁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왜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느냐'고 공개 압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란도 대러 드론 지원을 교착상태에 빠진 핵합의 복원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핵합의만 복원되면 원유 수출 등에 대한 제재가 풀리기 때문에 미국과 척지며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란과 러시아는 석유 수출국으로서 오랜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이란은 중국에 8월 중 들어올 러시아산 원유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산 원유 가격을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선물보다 배럴당 약 10달러 낮은 가격에 책정하기도 했다.
미국이 앙숙인 사우디와 관계 개선을 추진 중인 것도 이란에는 부담이다. 사우디가 미국의 요청대로 석유 증산에 나선다면, 미국으로서는 이란과 핵합의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란을 포함해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등 핵합의 당사국은 유럽연합(EU)의 중재로 지난해 4월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 해제 시점 등을 놓고 막판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