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개콘 넘어선 내공 만든 세 가지 일의 철학 [일잼포인트]

입력
2022.07.13 14:00
14면
<6>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 ②

편집자주

<일잼 원정대>는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caree-up)'의 인터뷰 브랜드입니다. '일에서의 재미'라는 희소자원을 찾아 정박하지 않고, 원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일하는 방법'을 수집합니다.


편집자주

‘일잼 포인트’는 ‘일잼 원정대’에 소개된 인터뷰이들의 ‘일하는 자아’를 분석하고, 이들만의 ‘일잘 비법’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 '일잼원정대' 인터뷰 읽고 오기 (관련기사 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71222050004518

숏박스, 피식대학, 장삐쭈, 과나, 스낵타운… 현재 유튜브에서 가장 잘나가는 코미디 크리에이터들은 모두 ‘메타코미디’에 모여 있어요. 하지만 10년 전,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40)가 ‘나는 코미디로 사업을 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웃찾사와 개콘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코미디는 돈 나올 구석이 도저히 없는 장르인데?” 10년 후, 영준씨는 국내 최초로 코미디 레이블을 만들어 냈습니다. 제로 투 원(Zero to One),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거죠.

영준씨는 만약 자신이 10년 전에 사업을 벌였다면 분명히 망했을 거라고 말해요. 전장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살아남긴 힘드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그는 제작사 CJ ENM부터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MCN 샌드박스를 두루두루 겪으며 다양한 무기를 장착했어요.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미래에 벌일 내 사업’에 대한 가상의 피봇(pivot)을 반복했죠. 밑그림은 수도 없이 바뀌었어요. ‘장인 정신’과 ‘상인 정신’을 함께 발휘하며 균형감각을 찾아간 결과, ‘코미디로 돈을 벌겠다’는 포부를 현실화할 수 있었고요.

그에게 10년간 쌓아 올린 '창업 준비생'으로서의 기술에 대해 물었습니다.

Note1. 데이터는 직관을 만든다

신입 시절, 'SNL 코리아' 촬영장에서 영준씨는 유독 예쁨 받는 막내 직원이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코미디가 좋다’며 손 번쩍 들고 온 신입사원은 드물었으니까요. 입만 열면 해외코미디 레퍼런스가 줄줄줄줄 쏟아지니 특히 주목을 받았어요. 꾸준히 쌓아 온 코미디 빅데이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저 친구, 좀 아는데?’ 소문이 나자 PD의 눈에까지 띄어, 미방영 가편집본이 나올 때마다 미리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특권까지 주어졌다고 해요.

물론 그 내공은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었습니다. 수백 편짜리 미국 시트콤들을 열 번씩 돌려본 것은 물론,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나 일본의 만사이(만담), 콩트 공연 역시 닥치는 대로 탐독했죠. 왜 다 해외 작품이였냐고요? 그야 국내 콘텐츠 중에 제대로 덕질할 만한 게 없어도 너무 없었거든요. 넘치는 덕질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해외 코미디로 향했죠.

그렇게 파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죠. ‘이거 혹시 나한테만 재미있는 건가?’ 그래서 코미디 영상만 올리는 아카이빙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의 이름은 ‘코미디의 정석’. 2016년,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심심풀이로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였죠.

“정말 이것저것 많이 올려봤어요. 수십 년 전 한국 코미디도 올려보고, 일본의 콩트도 올려보고. 그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였죠. 사회적으로 분열이 막 싹트고 있던 시기였거든요. 성별 대립, 세대 갈등이 표면 위로 매섭게 드러나고 있던 때였어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그런 분열의 기미를 날카롭게 감지하고 때리는 장르니까, 통쾌했던 거죠. 국내방송에서 절대 못하는 말들을 얘네는 너무 시원하게 하는 것 같으니까.”

‘세상에 이런 코미디도 있어?’ 너도나도 신기해하며 몰려들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채널인데 구독자는 금세 10만을 찍어 버렸죠. 영상을 올릴 때마다 ‘어디서 사람들의 반응이 터질까’, ‘어떤 영상에 좋아요가 많이 달릴까’ 예상하는 게 특히 재밌었다고 해요. 일종의 ‘시장 조사’였던 셈이죠. 딱 두세 줄의 문장으로 웃기는 ‘원라이너 조크’부터, 대사 없이 몸으로 웃기는 ‘논버벌 코미디’까지 형식을 가리지 않고 마구마구 올렸어요.

“그게 일종의 스터디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댓글 반응, 좋아요 수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볼 수 있겠다, 가능성을 봤거든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수요 조사를 마친 그는, 그다음 YG 엔터테인먼트에서 코미디언 유병재씨를 만나 국내 최초 한국형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기획하게 됩니다.


Note2. 전체를 그리기 위해선 ‘다 알아야 해’, 스스로 '커넥팅 더 닷'하라

“코미디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일본의 ‘요시모토흥업’이었어요. 일본의 코미디 생태계 자체를 구축한 회사죠. 코미디 제작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하고 있어요. 기획사, 제작사, 배급사이면서 극장 사업체기도 해요.

요시모토흥업은 설립 100년이 넘은 일본의 코미디 회사예요. 시작은 만사이(만담) 극장이었죠. 지금은 6,000여 명의 코미디언, 희극인들이 소속돼 있는 대기업이에요. 매주 수십 편에 달하는 쇼버라이어티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죠. 후세대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까지 만들어 코미디 작가와 코미디언을 교육한다고 해요. 실력 있는 코미디언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성장시키는 ‘탄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죠.

“요시모토흥업의 구조를 꼼꼼히 뜯어보니까, 이런 형태의 회사를 만들려면 다 알아야 하더라고요. 콘텐츠 제작, 매니지먼트, 인재 양성 시스템, 광고 비즈니스까지 전부요. 제가 만들고 싶은 건 단순한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창작집단인 ‘레이블’이었으니까요. 그래서 CJ ENM을 다니다가 YG엔터테인먼트로 간 거예요. 콘텐츠 제작과 광고 비즈니스는 어느 정도 봤으니, ‘소속사에서 연예인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배워야 했어요.

영준씨의 커리어를 보면, 확실이 ‘이 분야에서 모르는 건 없어야 한다’는 결기가 느껴져요. YG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와 공연 제작을 충분히 경험한 그는 다음 직장으로 MCN인 샌드박스를 선택해요. 코미디의 무대가 지상파 방송에서 유튜브, OTT로 바뀌고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거쳐 왔던 모든 회사에서의 경험들이 사업하는 데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다 도움이 돼요. ‘더 머무른다고 해도 배우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직했을 뿐인데, 한곳에 오래 남지 않고 여러 직무를 경험했던 게 커리어 빌딩에 무척 큰 자양분이 됐죠.”

2, 3년을 주기로 매번 새로운 일을 배울 때엔 ‘이 일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미처 알지 못했지만, 회사를 만든 지금에 와서 보니 각기 흩어져 있던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된 것이라고 해요. 영준씨의 이 말은 2005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의 졸업식에서 했던 전설적 연설,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와도 상통하는 이야기예요. 잡스는 대학 시절 우연히 들었던 서체 수업이 10년 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든 영감이 되었던 일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당신은, 당신 앞에 놓인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볼 때 연결할 수 있을 뿐이죠. 그러니 믿어야 합니다. 이 점들이 당신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영준씨의 경우도 똑같다고 해요. CJ ENM에 처음 입사했을 때, ‘제작 현장과 가장 가까운 직무가 무엇이냐’고 인사팀에 물었더니 ‘마케팅’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현장과 맞닿아 있는 일은 아니었죠. 기대와는 달랐지만, 다른 마케터들과 다르게 열심히 현장을 뛰며 제작진과 친해졌어요. 담당하고 있던 프로그램인 'SNL 코리아'의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단숨에 조회수 500만을 달성하기도 했고요. 이때 만들어진 감각은 10년 후, 유튜브 채널 브랜딩을 할 때 고스란히 연결됐죠.


Note 3. 작품성이냐? 사업성이냐? 중간을 점하라

콘텐츠 사업을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한쪽 끝엔 비즈니스(business)가 또 다른 끝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가 있을 거예요. 이 스펙트럼 중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되죠. 사업성에 너무 치중하면 작품성을 잃고, 작품성에 지나치게 쏠리면 수익이 떨어지니, 극단으로 갈수록 다른 한쪽을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어집니다. 콘텐츠를 만들며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하려면, 이 스펙트럼 위에서 나름의 균형 지점을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하죠.

저는 이 스펙트럼 위에서 딱 ‘정중앙’에 서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이게 저연차 때는 저주인 게요, 어느 쪽에 있어도 내 자리가 아닌 거 같은 거예요. 제작 부서에 있으면 ‘여긴 왜 돈 벌 생각을 안 하지?’ 하며 답답해해요. 반대로 사업부서에 가면 ‘이 사람들, 왜 작품성은 생각 안 하지?’ 하며 힘들어하고요. 어디에 가든 결핍을 느끼고 불만을 가지게 되죠. 저연차 때는 이게 너무 힘들었어요. 어느 쪽에서 일하든, 반대쪽을 그리워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연차가 쌓일수록 이 답답함이 점점 해소가 되더라고요.”

사업성이냐, 작품성이냐.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며 양쪽을 모두 오가 본 경험이 CEO가 되면서는 오히려 ‘강점’이 됐습니다. 사업가는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를 가져야 하니까, 이 둘 사이에서 ‘균형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사업 직무에서도 제작 직무에서도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고, 고민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던 시간들이 CEO로 자립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준 셈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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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