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조사를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주위를 환기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19년 이후에는 수수료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아산·서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의 의뢰를 받아 2016, 2019년 직업소개소가 노동자에게 법정 수수료 이상의 수수료를 떼는 관행을 조사했던,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이다.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행정당국에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법으로 금지됐던 유료직업소개소는 1968년 처음 허가됐다. 노동청이 같은 해 말 79개 허가 유료직업소개소를 대상으로 실태를 단속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34개 업체가 높은 수수료, 수수료 외 보증금 요구, 소개 내용 불일치 등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54년이 지났지만 유료직업소개소의 일탈은 여전하다. 꿈쩍 않는 현실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을 정리해봤다.
"일당은 직업소개소에서 줍니다. 하루 작업을 마치면 수수료를 떼고 현금으로 봉투에 담아 주기도 하고 계좌에 넣어 주기도 해요."
10년 넘게 유료직업소개소를 통해 건설 현장에서 일한 A씨의 말이다. 근로기준법 43조에는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라는 이른바 임금 직접지급 원칙이 있다. 그러나 직업소개소에서는 사업주로부터 일당을 받아 수수료를 공제하고 나눠 주는 곳이 많다. 이 경우 소개요금이 사용자로부터 징수되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로부터 징수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2016년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지역 직업소개소를 통해 노동자를 구한 사업장 5곳에 확인한 결과, 직업소개소에 소개요금을 별도로 주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실태조사를 진행한 조광복 노무사는 "직업소개소는 구인 업체와 일당만을 책정할 뿐 소개요금은 별도로 정하지 않았으므로, 일당에서 뗀 소개요금은 구직자가 낸 소개요금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직업소개소가 노동자에게 보수를 지불할 수 없도록 해뒀다. 국내에서도 건설업에선 '직접 지급제'를 법제화해, 건설사가 노동자의 통장으로 임금을 바로 지급하도록 해뒀지만 공공 공사에만 해당한다.
그렇다면 직업소개소의 임금 대리 지불은 근기법을 어긴 건 아닐까.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의 임금 지급 원칙은 임금체불을 막으려는 목적이 제일 크다"면서 "이 경우 임금체불이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의 임금 직접지불 원칙을 어겼다고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임금 대리 지불제도를 당장 금지하기 어렵다면 고용부 고시라도 지키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부 고시 제2017-22호(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에서는 소개요금은 반드시 사전에 구직자와 체결한 서면계약에 근거하여야 하고, 노동자에게서 구인자의 소개요금까지 뗄 때는 '소개요금 대리수령 동의서'를 받도록 명시해 뒀지만, 지키지 않았을 경우 처벌 규정이 없다. A씨는 아예 수수료율이 빈칸인 서류에 사인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은 "따로 처벌이나 과태료가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보통 구두로 계약을 진행한다"면서 "계약서가 없으니 단속을 하더라도 제대로 받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면 계약만 의무 조항으로 해두면 조사 및 처벌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 단속에서, 직업소개소가 구직자에게 받을 수 있는 수수료(최대 3개월간 월급의 1%, 구인자에게는 건설일용의 경우 10%이며 그 외는 30% 이하)를 초과해서 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과태료 등의 처분을 받는다.
지자체의 '단속'이 유일한 처벌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일보의 정보공개 청구 결과, 서울·경기 지자체에서 2010년부터 2022년 6월까지 12년간 소개 수수료 과다 징수(직업안정법 제19조 제3항 위반)로 단속된 건수는 20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직업소개소 등록을 취소당한 사례는 없고 과태료 및 영업 정지, 경고 수준의 처벌에 그쳤다.
2016년 대대적으로 직업소개소 과다 수수료 문제를 제기했던 음성노동센터에서는 "담당 주무관에 따르면 지도 점검 시에 소개요금 준수 여부 및 장부 보관 및 작성 여부 등을 확인하고, 부당 수수료를 받는 사례는 없다고 했었지만, 상담 현장에서는 수수료를 10% 이상 공제한다는 제보가 여전하다"고 했다.
직업소개소는 허가를 받아야 운영할 수 있지만 정작 '무허가' 직업소개소가 난립한다는 점도 일탈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2019년 충남지역의 관련 조사에서는 구인 공고를 낸 직업소개소 중 무려 84.7%가 무허가 불법 직업소개소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무허가 직업소개소는 소개료 과다 징수 등 불법을 저지를 개연성이 큰 만큼 이들에 대한 단속도 필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료직업소개소의 직업안정법 위반을 규율하는 지자체의 인력은 턱없이 미흡하다. 박윤준 상담실장은 “음성군 내 등록된 직업소개소만 100여 곳인데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1명”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 공무원은 직업소개소 담당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박준도 연구위원 역시 "직업소개소 단속 행정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이를 해결하려면 일벌백계뿐인데 업무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지자체 차원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자체, 고용부, 경찰 등이 모두 함께 나서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지자체 단속이 이뤄져도, 노동자가 빼앗긴 중간착취 금액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를 받아내려면 민사소송을 거는 방법뿐이다. 직업안정법에도 근로기준법에도 중간착취 피해자를 위한 제도는 없다.
임금이 체불될 경우에는 고용부 산하의 고용노동청을 찾아가면 구제받을 수 있다.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고용부 장관은 파산 등 일부 조건에 해당하면 노동자의 미지급 임금을 사업주 대신 지급한다. 1998년 외환위기로 기업의 도산이 급증하자 도입된 법이다.
유료직업소개소에 의해 피해를 본 노동자를 위해서도 별도의 '구제절차'가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노동법원이나 노동관계위원회 등 심판 기능이 있는 기관이 노동자의 권리침해를 판단, 구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직업소개소에 의한 중간착취가 일어나면 관할 노동기준지청에서 접수를 받는다. 또 조사 결과, 계약에 따라 지급해야 할 금액은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한다.
고용부는 2017년 구직자로부터 징수할 수 있는 직업소개요금의 상한을 임금의 4%에서 1%(최대 3개월간)로 줄였다. 그러나 구인자 수수료는 건설일용 10%를 유지하고 그외 직종은 30%로 오히려 크게 확대했다.
2010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직업소개기관이 기업으로부터 징수하는 직업소개요금은 2011년부터 자율화하는 대신, 구직자로부터는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금지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합의했다. 같은 해 이런 내용의 법안이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입법 예고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는 '구인자가 부담하는 요금이 실질적으로 구직자에게 전가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의견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13년 비정규직 관련 조사에서 "일부 민간 고용서비스 기구의 경우, 사용자가 부담하게 되어 있는 구인자 수수료를 구직자에게 전가하는 상황도 드러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구인자 수수료가 흔히 구직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에서, 구인자 수수료 통제 없이는 중간착취 시장의 근절이 어렵다.
국제노동기구(ILO) 민간고용서비스기관 협약 제181호 제7조 1은 '민간고용서비스기관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수수료나 비용을 근로자에게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직자에게는 아예 소개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구직자 수수료는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라고 전했다.
노동자가 구인자 소개료까지 떠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협약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민간에 맡겨진 직업소개 기능을 결국 공공이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준도 연구위원은 “직업소개 기능을 공공에서 아예 담당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이해 관계자가 많아 쉽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공공에서 담당하면 중간착취 문제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윤준 상담실장도 "일자리지원센터 등을 지자체에서 운영하면 민간 직업소개소의 수수료 과다 징수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