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관 취임과 함께 교육부는 많은 교육개혁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필자가 60개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와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응답했다. 고교학점제 취지와 현행 수능의 방향이 상충하므로 수능시험이 존재하는 한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고교학점제 도입 시기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98%가 대입제도 개편 작업을 먼저 하고, 선택과목 교사의 수급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 뒤에 시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실태 조사에서는 고교학점제에 따른 선택과목 증가로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니,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선택 과목을 가르칠 전공 교원 충원과 교사 연수가 시급하고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시설 증축 및 보완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평소에도 행정업무가 과중한 상태인데, 선택 과목이 늘어나면 시험 출제, 성적평가 처리 및 평가기록 등 부수적 업무까지 겹쳐서 정작 중요한 수업교재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설상가상 교사의 권위까지 무너져서 학생 생활지도나 수업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의 무리한 시행은 현실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방법으로 현장 교사들은 교권 회복, 행정 업무 감소, 선택 과목 교사 수급의 3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응답했다(95%). 이는 각 시·도 교육청에 '고교학점제 관리 부서' 또는 '대체 교사 관리 부서'를 신설, 행정 업무 전담 인력 공급과 선택 과목 교원 충원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함을 뜻한다.
교육부는 현장 적용에 문제가 많은데도, 충분한 준비와 인프라 구축 없이 고교학점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실패한 대입제도 개편 작업을 해결하지 않고 새 정책만 밀어붙인다면 또 다른 실패는 자명하다.
현장 교사들은 몰아붙이기식 정책 대신 학생과 교사를 위한 정책을 요청하고 있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명분으로 학생 맞춤형 교육을 내세우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수능 시험에 유리한 교과목만 선택하고 있는 만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 문제 해결, 즉 대입제도 개편 작업 없이 고교학점제 도입에만 집착하는 것은 교육정책의 수요자인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외면하는 행태일 뿐이다.
교육부는 지금부터라도 대입제도 개편 작업과 교사들의 행정 업무 감소라는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탁상행정으로 밀어붙이는 교육 정책 추진 방식에서 벗어나서 현장 파악 행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공감을 얻는 교육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