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는 물론 미국인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 민주당보다 공화당에 투표하는 사람의 기대 수명이 더 짧아졌다는 도발적 논문 때문이다. 각 주(州)마다 미국식 건강보험인 ‘메디케이드’ 적용 여부나 최저임금, 담배 및 총기 규제, 마약 중독 관련 보건정책 적용 여부 등이 건강과 사망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0일(현지시간) 미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2001년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의 사망률은 거의 비슷했지만 최근에는 6배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NPR는 “정책이 보수적일수록 기대 수명 위협도도 커진다”라고 전했다. 미국 브리검 여성병원 의사 하이더 워라이히가 2000년 이후 선거 결과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모든 미국인 사망 데이터를 각 카운티별로 비교한 결과다. 미국 인구의 99.8%와 5번의 대통령과 주지사 선거 결과가 표본 대상이었다.
분석 결과 2001년부터 2019년까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카운티의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850.3명에서 664명으로 22% 감소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 카운티의 사망률은 867명에서 771.1명으로 11% 감소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2008년 이후에는 공화당세가 강한 지역의 사망률이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고 워라이히는 밝혔다.
원래 성ㆍ인종ㆍ거주지역별로 사망률 차이가 있었지만 지난 20년 사이 전체적인 사망률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도시든 시골이든 개선돼 왔다. 하지만 투표 결과로 확인된 각 카운티의 정치 성향 차이가 사망률 격차로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뉴욕주와 공화당 강세 지역인 오클라호마주를 비교했을 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두 주 주민의 평균수명은 거의 같았지만 이제는 차이가 커졌다고 NPR는 보도했다. 뉴욕은 평균수명에서 상위권에 위치했지만 오클라호마는 바닥이었다.
또 2001년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 강세 지역의 심장질환 사망률은 유사했지만 2019년에는 민주당 지지 지역의 사망률 감소가 두드러졌다. 이는 암과 호흡기 질환 등 다른 질병에서도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났다고 워라이히는 지적했다.
이 같은 결과는 민주당과 공화당 정치인의 공공보건정책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워라이히는 주장했다. 2010년 미 의회에서 의료보험법이 통과되고 저소득층 건강보험 지원을 늘리는 메디케이드가 민주당 주를 중심으로 확대됐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는 메디케이드 통과를 막았다. 또 저소득층의 생활 여건 향상을 돕는 최저임금제나 담배ㆍ마약 규제가 민주당 지역에서는 강화됐지만 공화당 지역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는 분석도 있었다.
워라이히는 “해결책은 건강 관리를 당파 이념과 분리하는 것”이라며 “만성 질환 치료 개선과 시골 지역 의료 지원 등 초당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는 노력을 가중하고 메디케이드 확대에도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물론 NPR는 “미국에선 건강이 모두 개인 선택의 문제라는 서사가 존재한다”며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