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쪼개기'로 7시간 대북 감청 보고...서욱 장관이 삭제한 파일은?

입력
2022.07.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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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이 지시하지 않으면 합참 정보본부장이 먼저 움직이겠나."

전직 군 고위당국자는 8일 이렇게 말했다.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격 직후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에 올라온 수십 건의 ‘기밀 정보’ 삭제 논란과 관련, 밈스 총책임자인 이영철 합참 정보본부장의 단독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욱 당시 국방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민감하고 불확실한 첩보가 무분별하게 전파되면 혼란을 야기해 꼭 필요한 부서만 보는 게 맞다는 지침을 내렸다”고 인정했다.

관건은 서 전 장관의 단독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윗선인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는지에 달렸다. 군 당국은 입을 닫은 채 “민감한 정보의 불확실한 전파를 막기 위해 유통망에서 게시물을 내렸을 뿐, 정보 원본 자체는 삭제되지 않았다”며 결백을 강조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반면 국민의힘 등 여권에선 “문재인 정권이 ‘월북몰이’를 하기 위해 불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삭제했다”고 다그치며 맞서고 있다.

30분씩 쪼갠 ‘7시간짜리 감청 보고서’ 어땠길래

핵심은 7시간 분량 '감청 보고서’의 생산·유통 과정에 있다. 2020년 9월 21일 오전 11시 30분 실종된 이씨가 군 당국에 최초 포착된 건 22일 오후 3시 30분이었다. 이후 북한군 총격을 당한 이씨 시신은 약 7시간이 지난 오후 10시 11분 소각됐다.

여권 관계자는 “당시 감청 과정에서 비문이나 잡음, 북한군이 쓰는 은어가 혼재해 첩보를 30분 단위로 끊어 실시간 분석, 보고했다고 들었다”며 “7시간 동안 30분씩 쪼갠 보고서와 중간·종합 보고, 영상 정보 등까지 포함하면 파일은 족히 수십 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은 이 정보를 밈스에 올리기 전에 미국과 협의를 거친다. 양국 정보판단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30분의 간격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국가정보원과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사령부, 사단급 이상의 제대는 밈스를 통해 공유한 정보로 '블랙북'을 만들어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활용하는 구조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서 전 장관이 과연 어떤 정보를 선별해서 삭제했느냐다. 30분씩 쪼개져 분석돼 유통된 보고서마다 이씨의 자진 월북 여부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초기 군 당국은 이씨의 월북 혹은 표류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에 군 당국이 자진 월북으로 보기 힘든 파일은 지우고, 그 반대의 파일은 남기는 ‘취사선택’을 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지적이다. 서 전 장관은 이와 관련 “정보의 범위를 특정하지 않고 민감한 정보에 대해서만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월북 조작을 은폐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서 장관 자체 판단? 靑 입김 작용?

서 전 장관이 삭제를 지시한 시점은 2020년 9월 23일 오전 10시 이후인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오전 1시에 이어 두 번째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때다.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서 전 장관은 물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참여했다. 밈스 관리책임자인 이영철 정보본부장도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날 회의에서 청와대 지침을 받고 군 수뇌부가 파일 삭제에 착수했을 거란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서 전 장관이 불과 5일 전에야 취임한 신임 장관이었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에 힘을 싣는다.

반면 전날 국방부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태스크포스(TF) 단장 김병주 의원은 신범철 차관 등과 면담 후 “밈스에서 이렇게 삭제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많다고 한다”며 “처음에는 정보를 모든 부서에 보내는데 정보가 좁혀지면서 해당되지 않는 부서와 공유할 필요가 없는 게 있으면 배부선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전 장관의 조치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