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또 "펑"... 흰 연기 속 피 흘리며 쓰러진 아베

입력
2022.07.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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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 유세 중 수제 권총에 피격
41세 전직 해상 자위대원 "아베 죽이려 했다"
기시다 "아베 상태 심각...목숨 건지길 기원"

일본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8일 오전 11시 30분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근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세차도 없이 단출한 단상에 올라 집권 자민당에 표를 몰아 달라는 가두연설을 하고 있었다. 연설을 시작한 지 1분 남짓한 순간 그의 등 뒤에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놀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또다시 '펑' 하는 소리가 울렸고 아베 전 총리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늘을 향해 아스팔트에 누운 아베 전 총리의 흰 셔츠 군데군데 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흰 연기 뒤 '펑'...피 흘리며 쓰러진 아베

아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한 범인은 나라시에 거주하는 41세 남성 '야마가미 데쓰야'. 베이지색 카고 바지와 회색 반팔 차림의 범인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수제 권총으로 아베 전 총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일반 권총보다 총열이 길어 사냥용 산탄총의 총신을 톱으로 짧게 잘라낸(Sawed-off) '소드오프 샷건'이라는 추정도 나왔지만 경찰은 "아베 전 총리가 권총에 맞았다"고 밝혔다.

범인 야마가미는 현장에서 바로 경찰과 경호원에게 체포됐다.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야마가미는 범행 후 도망도 가지 않고 현장 상황을 지켜봤다. 현지 언론들은 범인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3년간 일본 해상 자위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고 보도했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을 품고 죽이려 했다"며 "다만 그의 정치신념에 대한 원한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41세 전직 자위대원..."아베 죽이려 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총격에도 불구하고 아베 전 총리가 곧장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심장 마사지 등 응급조치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서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기도 했다. 피격 15분 만에 도착한 구급차로 옮길 때까지도 의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구급차로 이송하는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헬기로 바꿔 타고 오후 12시 20분쯤 나라현립 의과대학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심장이 뛰지 않는 '심폐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폐정지는 의료진이 공식 사망판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심장과 호흡이 정지한 상태를 뜻한다. 병원 의료진은 오른쪽 목 총상과 왼쪽 가슴 출혈 치료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사건 발생 5시간 30분 만인 오후 5시 3분쯤 결국 숨을 거뒀다. 나라현립 의대병원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 전 총리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바이털 사인(활력 징후)이 없었다"며 "심한 출혈로 생명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아베 상태 심각…비열한 만행 용서 못해"

충격적인 소식에 일본 정부와 자민당도 급박하게 움직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야마가타현에서 선거지원 유세를 펼치다 급히 헬기를 타고 도쿄 총리관저로 복귀했다. 자민당 내 주요 정치인들도 유세 일정을 줄줄이 취소했다.

기시다 총리는 오후 2시 30분 기자회견에서 "의료진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분투 중이지만 심각한 상태"라고 아베 전 총리의 상태를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가 이뤄지는 가운데 일어난 비열한 만행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범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자민당은 사건 발생 6시간 만에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공식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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