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데뷔한 백낙청 "전 세계 한국 문화 열풍, 기본엔 'K문학' 있다"

입력
2022.07.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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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 평론집 30여년 만에 개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신경숙 표절 사태 옹호로 비판받은 후 7년
"의도적 도둑질 아니란 생각은 마찬가지"
최근 '백낙청TV' 시작… 젊은 층과 소통 기대
"촛불 염원 담은 2기 촛불정부 만들어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중순 유튜브 채널 '백낙청 TV'를 개설해 벌써 9개의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1980년대에 출간했던 2권의 평론집 개정판도 냈다. 올해로 여든 넷, 민족문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에게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는 작업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유튜브 방송은 뜻밖이다. 6일 서울 마포구 창비 빌딩에서 만난 백 교수는 "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주로 엘리트층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과 내 생각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았어요. 더 늦기 전에 폭넓은 독자층과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염원이 있었다"고 '늦깎이 유튜버' 도전에 대해 설명했다.

분단 등 민족사적 맥락에서 현실에 대응하고자 했던 그의 민족문학론의 유통 기한이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당대와 호흡하려는 정신 자체는 식지 않은 셈이다. 그가 새로 낸 평론집 개정판은 원제였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 3 대신 각각 '민족문학의 현단계'와 '민족문학의 새 단계'라는 제목을 앞세웠다. '우리 문학이 어떤 단계에 왔는지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 평론가의 과업이라고 보는 소신을 담은 제목이다. 그는 "당시 문학에 대한 제 나름의 진단과 작품평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게 많았다"며 "(제 비평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잊혀서 안 되는 중요한 작가와 작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개간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백 교수 스스로도 "민족문학이란 말은 굳이 쓰지 않는다"고 했다. 논쟁적이고 가치 지향적이었던 민족문학의 개념도 "한국어로 된 또는 한민족이 쓴 다양한 문학들을 사실적으로 통칭하는 용어로 용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열린 시각으로 볼 때 민족문학은 마치 여러 동심원이 겹쳐진 듯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한국어로 한반도 이야기를 쓴 것이 민족문학 동심원의 내핵이라면 이민진의 '파친코'와 같은 디아스포라 문학은 중심에서 멀지만 여전히 우리와 연결되는 민족문학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현역 평론가라 할 수는 없지만 노장의 이론가가 보는 2020년대 우리 문학의 현 단계는 무엇일까. 최근 전 세계적 한국 문화 바람의 바탕에 'K문학'이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문학이 위축됐다는 일각의 우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진 영화나 드라마, 아이돌 등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한 탓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K문학'도 외국에서 상을 많이 받고 번역도 많이 되면서 점점 더 알려지고 있다"며 "K문화라는 것이 있다면 그 기본은 'K문학'"이라고 힘줘 말했다. K문학의 힘으로는 튼튼한 서사를 꼽았다. 그는 "고생도 누구 못지않게 했지만 앉아서 당한 민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야깃거리가 많은 민족"이라면서 "또 우리 작가들이 그것을 써내는 작업을 꾸준히 한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와 인터뷰에서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로 촉발된 '문학 권력'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표절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사건이다. 8년이 지난 지금 그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그때 욕을 많이 먹었고 지금도 욕할 사람이 있겠지만"이라며 입을 뗀 그는 "신경숙이 물론 실수했다. (하지만) 그걸 의도적 도둑질, 파렴치범으로 보는 데는 찬성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문인들의 책을 많이 출판하는 출판사(창비) 관계자로서 기본은 지켰다고 생각한다"는 게 변함없는 그의 생각이다. 50년간 창비를 이끈 리더로서 그는 "개인적으로 창비가 '문단 권력'이 되는 것을 항상 경계해왔고 여러 동지들도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문단 권력'에 대한 엄격한 정의나 그 작동 양상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거의 없었다"는 생각도 밝혔다. 2016년 창비 50주년을 맞아 백 교수가 편집인에서 내려오는 등 세대 교체를 하고 새 출발을 기약한 후 창비의 행보에 대해선 "전체로서 '한결같되 날로 새로움'을 계속 지향하고 있는데, 결과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답했다. 유튜브 '백낙청TV'도 그런 새 시도의 일환인 셈이다.

때론 현실 정치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던 그지만 최근에는 말을 크게 줄였다. "87 체제의 거대한 전환처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라는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책 '2013년 체제 만들기'도 쓰고 원탁회의도 만들었지만 실패했어요. 그 후론 정치 활동은 거의 안했지요."

그렇다고 정치적 염원이 사라진 게 아니다. 2기 촛불정부의 출범이 그의 바람이지만 현실은 요원하다. 그는 "촛불 안의 염원을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촛불'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의 뜻만 있는 게 아니다. 멀게는 동학농민운동까지 닿는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민중적 열망의 표현이다. 그는 청년 세대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도 보수화가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염원을 외면한 민주당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그는 "민주당 내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권력을 안 놓으려는 게 강력한데, 이걸 못 이겨내면 민주당도 미래가 없고 2기 촛불 정부도 만들기 쉽지 않다"고 단언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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