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조사는 어떻게 음모론과 혐오로 얼룩졌나...8년 조사 실패의 기록

입력
2022.07.08 09:00
14면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사법주의’ 한계에 갇혀 진실 규명 실패

‘세월호 참사’ 얘기에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이미 끝난 일 아니냐” 혹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음모가 있다”. 답변은 다른데 표정들은 똑같이 구겨진다. “피곤하다. 그만 얘기하자.”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8년간 세 차례나 공식 조사기구를 만들고도 침몰 원인조차 밝히지 못했다. 그들은 한심했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는 2018년 ‘세월호 침몰 원인’이랍시고 두 가지 보고서를 내밀었다. ‘복원력이 나쁜 상태에서 선체 내부 기계 결함으로 인한 침몰’(내인설)과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외력설) 모두 인정했다. “잠수함에 부딪혔다”는 식의 음모론을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책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들’은 세월호 참사 조사가 왜 실패로 끝났는지 파고든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 선조위 및 사회적참사위원회(사참위) 종합 보고서 외부 집필진으로 활동한 저자가 써낸 실패의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 조사가 음모론에 빠져 들고, “잊지 않겠다”는 슬픔이 혐오로 바뀌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책은 몇가지 오해부터 바로잡는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방해가 있었나. 그렇다. 그러나 진상 규명 실패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진상 규명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학적ㆍ기술적 한계 때문인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조사 과정엔 신뢰할 만한 해외 기관들도 참여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책임자를 끄집어내 사법 처리하려는 사법주의에 사로잡혔다. 선조위가 2018년 8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두 개의 보고서를 낸 배경도 여기에 있다. 침몰 원인을 조사한 선조위 내부 전문가는 물론 부룩스벨ㆍ마린 등 해외 전문기관은 모두 외력설을 부정했다. 선조위는 이를 뒤집고 내인설과 외력설을 함께 채택한다.

'뭔가 다른 원인이 있다'는 외력설이 채택된 이유를 책은 이렇게 말한다. "내인설만 선택하면 이 거대한 비극을 책임질 '결정적 누군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2017년 촛불집회 당시 사회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자 했던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다. 저자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서사가 계속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의 불씨가 커지길 바랐을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조사가 진영논리에 오염됐다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지나친 단순화다. 책은 내인설이 진상 규명론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배경도 서술한다. 우선 검찰은 해운사인 청해진해운의 책임 추궁에 집중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치부했다. 경찰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최루액으로 진압했다. 보수 언론은 ‘세월호 유족 배상금 8억 원 요구’ 등의 기사를 양산하며 유족을 향한 혐오감을 조성했다. 책은 “정부가 이렇게까지 숨기는 이유가 뭐냐는 의구심을 키운 것은 과연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책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짚어 나간다. 우선 “5ㆍ18 민주항쟁의 발포 명령자를 찾듯이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거나 승객들을 구조하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난은 수많은 사람의 잘못과 부주의, 무능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온당한’ 정도의 책임을 묻자는 제안이다.

저자 박상은 전 특조위 조사관은 “피해자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은 책임을 진 반면, 우리(특조위)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책을 썼다. 지난해 보건학자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부교수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의 건강 실태를 분석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조사가 한편에선 음모론, 다른 편에선 혐오로 얼룩졌으나 진실을 추적하려는 일각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박 전 조사관은 본보에 “개인적으로 진실의 조각들은 다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하나로 재구성해 구성원들이 납득할, 공동체 전체의 기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매듭 짓는 일이 남았다”고 했다. ‘이제 그만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이들에게 ‘거의 다 왔다’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