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태풍에 길 잃은 바이든... 중국·사우디 정책 '우왕좌왕'

입력
2022.07.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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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시키겠다던 사우디 방문... '식언'
'사우디 원유 증산' 관철도 불투명  
중국 관세 인하도 오락가락...여론 싸늘



미국을 덮친 최악의 인플레이션 앞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인권 우선주의' 원칙을 깨고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바이든의 이런 행보가 지지층을 분열시켜 11월 중간선거를 망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자존심 접고 사우디 가지만…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3일부터 16일까지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방문한다. 사우디에서는 실질적인 정부 수반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면담한다.

빈 살만을 만나기로 한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암살당했는데, 빈 살만이 배후로 지목됐다. 대선후보 시절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국제사회에서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2021년 1월 집권 뒤엔 사우디의 앙숙 이란과 핵 합의 복원을 시도하면서 사우디와는 거리를 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이 변했다. 러시아산 석유 수출 제한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이는 물가 상승에 기름을 끼얹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세계 원유 시장의 큰손인 사우디에 증산을 요청하는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가 바이든의 방문으로 미국의 요청을 순순히 들어 줄지는 미지수다. 경기침체론 확산에 국제 유가가 두 달 만에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데다, 왕실과 러시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러시아는 카슈끄지 사건으로 서방국가가 사우디를 따돌릴 때 유일하게 손을 내민 나라다.

로이터는 사우디 소식통 등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왕따 행보는 왕실에 모욕감을 줬다"며 "사우디가 원유를 증산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중국 관세 놓고도 '우왕좌왕'... 지지층 분열 우려도

중국 정책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자세를 접고 대중국 관세 인하 카드를 이번 주 꺼낼 예정이었다. 미국 산업계가 "미국산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발하자 주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고 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관세를 계속 유지해 달라는 산업계 등의 요청이 이번 주 400여 건 이상 접수됐다.

대중국 관세 인하의 물가 억제 효과를 두고 관측이 엇갈리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관세를 전면 폐지하기 어려운 데다, 이번 물가 상승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공급 부족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노무라연구소는 대중국 관세를 인하해도 미국 물가 상승률은 0.4%포인트 낮아지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제프 머클리 등 민주당 상원의원 4명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사우디를 방문하면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중동 담당인 존 알터만은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은 동맹과의 관계 재조정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바이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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