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출장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지인이 '민간인' 신분으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건희 여사의 '사적 보좌'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대통령실은 적법한 승인을 받은 수행원 신분이어서 순방 동행에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공조직 대신 사적 인연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구심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배우자 신모씨는 대통령실 소속 직원이 아니지만 지난달 28~30일(현지시간) 나토 정상회의 순방 행사 기획 업무를 맡았다. 스페인 동포 만찬 간담회 행사 등을 기획했다고 한다.
'비선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신씨가 김 여사의 개인 일정을 기획하고 수행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씨는 김 여사를 수행한 게 아니다. 순방 행사를 전체적으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방문 당시 김 여사의 오랜 지인인 김모 충남대 교수와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들이 동행해 '사적 보좌' 논란이 인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로 번져 제2부속실 부활론이 부각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대통령실은 신씨의 순방 동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장관의 승인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친 '기타 수행원' 신분이라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씨가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은 만큼 특혜나 이해충돌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기타 수행원으로 분류되는 대통령 주치의도 무보수 명예직인데, 같은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외교부도 국제 행사를 기획하는데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꼭 발탁해서 데려갔어야 했는가의 의문은 남는다. 역량보다 '사적 인연'이 작용해 발탁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신씨는 윤 대통령 지인의 딸이고, 남편인 이 비서관은 대전지검 근무 당시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 내 대표적 '윤석열 라인'이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의 결혼을 중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대선 예비후보 신분일 당시 신씨와 신씨 모친이 각각 1,000만 원씩 정치후원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씨가 대통령 부부와 오랜 인연이 있는 건 맞다"고 했다. 다만 "신씨가 해외 체류 경험이 풍부해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교류 행사 기획 경험이 많다"며 "행사 기획이라는 게 전문성도 있지만, 대통령 부부 의중도 잘 이해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씨는 윤 대통령 취임 초기 대통령실 임용을 타진하고 출근도 했으나, 남편이 '인사비서관'이라는 특수한 직책을 맡고 있어 이해충돌 논란이 번질 것을 우려해 임용을 포기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실이 '비선 채용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 부속실 소속 최모 선임행정관도 윤 대통령의 외가 쪽 6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최 선임행정관은 대선 경선 캠프 구성 때부터 여러 업무를 수행해 임용된 것"이라며 "외가 6촌은 이해충돌방지법상 채용 제한 대상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야당은 이날 신씨의 동행 경위를 공개하고 항공편과 숙소 제공이 적법했는지 밝히라고 공세를 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박근혜 정권 시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빗대며 국정조사를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 부부와 인연만 있으면 아무런 기준과 원칙 없이 민간인에게 일급 기밀 사항을 공유하고 대통령 일정과 행사를 기획하게 하느냐"며 "국민 상식을 심각하게 벗어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간의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듣기 위한 차원이었는데 조금 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며 "최대한 조심해서 관리를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