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적지 않은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사회는 조금씩 엔데믹(풍토병화)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직접적 자장 안에 놓이면서 그 어느 분야보다 피해가 컸다. 올해부터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뮤지컬의 회복세가 강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1,826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 뮤지컬 전체 티켓 판매액(2,343억 원)의 80%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말 공연 성수기를 포함한 하반기 시장을 감안한다면 올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4,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도 훨씬 성장한 규모다.
지난달 24일 문을 연 제16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역시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운영되며 순조롭게 대단원을 향해 가고 있다. DIMF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뮤지컬만을 테마로 하는 국제 행사다. 러시아와 프랑스, 폴란드, 중국, 인도 등 영미권 밖 세계 각국의 뮤지컬을 소개하며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로서의 면모를 지켜왔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해외 뮤지컬을 초청하지 못했다. 올해는 개막작으로 슬로바키아의 '투란도트'를, 폐막작으로는 영국의 '더 콰이어 오브 맨(The Choir Of Man)'을 선보였다.
개막작 '투란도트'는 DIMF에서 개발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슬로바키아 버전이다. '스몰 라이선스' 방식으로 음악과 대본을 구매해 그들의 형식으로 만들어냈다. 가상의 바닷속 왕국 오카케오마레로 피신한 칼리프 왕자 일행을 전쟁으로 피란 온 난민으로 설정해 동시대성을 확보했다. 사랑을 통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투란도트 공주의 이야기를 모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단순한 전개로 설득력 있게 들려줬다.
폐막작 '더 콰이어 오브 맨'은 독립적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레뷰(Revue) 뮤지컬이다. 펍에 모인 9명의 배우가 각자의 사연을 익숙한 팝송을 연주하며 들려주는 '주크박스 뮤지컬'이기도 하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 '임파서블 드림(The Impossible Dream)'부터 그룹 퀸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밴드 펀의 '섬 나이츠(Some Nights)'와 같은 가창력 뛰어난 남성 보컬의 노래뿐 아니라 시아의 '샹들리에', 케이티 페리의 ‘틴에이지 드림' 등 여성 보컬의 노래를 개성 있는 합창곡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신나는 노래와 연주,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강렬한 퍼포먼스로 팬데믹 상황에서 폐쇄된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DIMF는 첫해부터 꾸준히 창작뮤지컬 개발에 힘을 쏟아 왔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마이 스케어리 걸', '프리다' 등을 발굴해 온 창작지원 섹션에서는 5편의 신작 뮤지컬이 경연을 벌였다. 판타지 소설의 양대 산맥 '나니아 연대기'의 C.S. 루이스와 '반지의 제왕'의 J.R.R. 톨킨의 우정과 예술관의 갈등을 그린 '인비저블', 퍼펫을 이용해 군견과 이를 관리하는 군견병의 우정을 보여준 '산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를 예술가적 관점에서 접근한 '브람스', 조선시대 천재적 화가와 화가를 꿈꾸는 천방지축 대감댁 아씨의 로맨스를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담아낸 '봄을 그리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 과학자 메리 애닝의 삶을 그린 '메리 애닝' 등 다양한 소재와 스타일의 지원작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올해부터는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개발 중인 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뮤지컬인큐베이팅사업 리딩공연을 신설해 개최했다. DIMF는 2015년부터 국내 우수한 뮤지컬 창작자를 교수진으로 한 뮤지컬 아카데미를 운영해 오면서 서서히 그 성과를 내고 있다. 창작 산실로서의 역량을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한 일환이다.
팬데믹 이후 대면 경험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뮤지컬 시장의 활기, 그리고 DIMF의 성공적 개최는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