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초대 경찰청장 후보에 윤희근(54) 경찰청 차장이 5일 내정됐다. 지난해 12월 치안감 승진 후 7개월 만에 14만 거대 조직을 통솔하는 1인자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다. 경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고속 승진이다.
하지만 윤 후보자의 앞길은 난관투성이다. 당장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안에 협조하면서도, 들불처럼 번지는 경찰 조직의 반발을 추슬러야 한다. 정권과 조직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쏠렸다가는 ‘레임덕 청장’ ‘식물청장’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벌써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 “윤 후보자가 독이 든 성배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이날 임시회의를 열어 윤 후보자를 면접한 뒤 ‘경찰청장 임명 제청 동의안’을 의결했다. 앞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면 절차는 마무리된다. 임기는 2년이다. 그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 출신인 윤 후보자는 1991년 경찰대(7기)를 졸업한 뒤 경위로 임관했다. 서울경찰청 정보 1ㆍ2과장, 정보관리부장 등을 두루 지낸 경찰 내 대표적 ‘정보통’이다. 지난해 12월 치안감을 달았고, 반 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5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 ‘넘버2’ 경찰청 차장에 임명됐다. 경찰청장(치안총감) 임명이 확정되면 7개월 만에 경무관에서 치안총감까지 초고속 승진 코스를 밟게 된다.
그러나 앞날은 탄탄대로보다 가시밭길이다. 당장 후보자 신분으로 ‘경찰국(가칭)’ 난제를 풀어야 한다. 이미 행안부는 15일 경찰국 신설을 골자로 하는 경찰 통제안 발표를 예고한 상태다. 자연스레 일선 경찰의 분노 수위도 임계치에 다다랐다. 경찰 노조 격인 경찰직장협의회 회장단은 “치안본부의 부활”이라며 4일부터 ‘릴레이’ 삭발식을 이어가고 있다.
고위직 여론 역시 걱정이 훨씬 많다. 경찰 관계자는 “전임 김창룡 청장이 경찰대 4기인데 7기 윤 후보자를 지명하며 ‘기수 파괴’ 인사를 단행한 건 경찰 지휘부부터 새 정부 입맛대로 물갈이하겠다는 노림수”라며 “충성심을 확인했으니 내정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실제 윤 내정자는 줄곧 경찰국 신설에 침묵해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흡족해할지 모르나, 윤 내정자의 저자세가 계속되면 임기 초부터 리더십은 급격히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의 관계 설정도 관건이다. 이 장관은 경찰국을 앞세워 행안부 장관의 총경 이상 고위직 인사 제청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700여 명 경찰 간부들이 청장이 아닌 장관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핵심 수사 실무자인 총경 인사까지 장관이 쥐락펴락하면 ‘식물청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윤 후보자는 “인사권과 제청권을 조화롭게 행사하면 된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한 총경급 인사는 “경찰국이 지금은 단순 보좌 업무로 출범하겠지만, 덩치를 키워 경찰관 근무평정 권한까지 쥘 경우 청장 인사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후속 논의도 당면 과제다. △검찰의 보완수사 확대 △검찰의 송치요구권 확대 등 각종 ‘디테일’을 두고 향후 검경 협의체에서 두 기관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는 평가다. 내부적으로는 경찰 업무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수사 부서 ‘기피’ 현상 해결이 시급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윤 후보자가 수사 경력이 부족한 만큼, 수사 관련 문제가 불거질 경우 청장 인사의 적절성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