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타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8년 함남 신흥에서 출생한 이 교수는 1976년 에이즈ㆍ말라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전염성 질환으로 알려진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인 ‘한타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진단법, 예방백신까지 개발한 의학자이자 미생물학자다. 이런 공로로 그는 ‘한국의 파스퇴르’로 불렸다.
6ㆍ25전쟁 당시 한탄강 전투에 참여했던 유엔군 3,000여 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이 중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이 교수는 1976년 들쥐에게서 나온 바이러스가 이 병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한탄강 이름을 따 ‘한타 바이러스’로 명명했다. 한타 바이러스는 한국인이 발견한 최초의 병원 미생물이다.
또한 이 교수는 1989년 유행성 출혈열 진단법을 개발한 데 이어 1990년에는 국산 신약 1호인 한타 바이러스 예방백신 ‘한타박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바이러스 병원체를 발견하고 진단법, 예방백신까지 모두 개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고인의 업적은 전 세계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의학ㆍ생물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학술 분석 정보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한 노벨상 유력 후보 16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고인은 함흥의대를 다니다가 월남해 195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59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미생물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3년부터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고려대 의대 학장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신증후출혈열연구협력센터 소장, 대한바이러스학회 초대 회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미국 최고민간인공로훈장(1979), 인촌상(1987), 호암상(1992), 태국 프린스 마히돌상(1995), 일본 니케이 아시아상(2001), 과학기술훈장 창조장(2002), 서재필의학상(2009)을 받았고, 2018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추대됐다. 미국 학술원(NAS) 외국회원, 일본 학사원 명예회원으로 선정된 바 있다.
유족은 부인 김은숙씨와 2남(이성일 성균관대 공대 교수,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11시 50분, 장지는 서울추모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