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사태 3년간 '매년 건강보험료 수입의 20% 규모를 재정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민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정부가 지원하도록 한 규정은 올해 12월 효력을 잃는다. 결국 국민이 낸 건보료로 해결해야 하는데, 추계상 건보료를 지금보다 18.7% 올려야 정부 지원액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다. 내년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과 의료기관 수가 인상,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최소 4조 원 이상의 대규모 추가 지출이 예상되는 만큼 건보 재정 건전성을 높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한국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정부의 건보 재정 지원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지원 비중은 국민이 낸 보험료 수입액의 13~14.8%에 그쳤다.
2007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은 매년 건보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했다. 그해 의약분업(의사가 처방, 약사가 조제) 시행으로 재정 지출이 급격히 불어날 것을 우려, 건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다. 20%는 국고지원금 14%와 담배사업자의 부담금으로 조성되는 건강증진기금(담배부담금) 6%로 구성된다.
그런데 2020년 정부 지원액은 건보료 수입의 14.8%인 9조2,283억 원이었다. 국고 지원과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된 금액은 각각 7조3,482억 원(보험료의 11.8%), 1조8,801억 원(3%)이다. 2021년엔 9조5,720억 원으로 액수는 늘었지만 비중은 13.8%로 감소했다.
정부는 법 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20%'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6~2019년에도 정부 지원 비중은 매년 감소했다. 2015년 16.1%에서 2016년 15%로, 2019년에는 13.2%까지 줄었다.
정부는 예산·예상 수입 추계치를 낮게 잡거나 '상당한 금액' 등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지원액을 적게 잡아 왔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국가는 매년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규정했다. 국민건강증진법 부칙도 '당해 연도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했다.
정부가 법 규정을 안 지킨 것도 문제지만 올해 연말이면 이 근거마저 사라진다. 2007년 법 개정 당시 '5년 한시 지원 규정' 조항을 넣었는데, 기한 만료 직전 연장하면서 유지해 왔다. 마지막으로 개정된 건 2017년으로, 올해 12월 31일이면 기한이 만료된다. 이후 정부가 계속 지원할지는 불확실하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 노동조합 추산에 따르면 건보료를 지금보다 18.6~18.7%까지 인상해야 올해 지원액인 약 10조 원을 충당할 수 있다. 전 국민의 월평균 보험료가 2만 원 이상 오른다는 계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보는 내년 4조 원 이상의 대규모 지출을 앞두고 있다. 건보 노조에 따르면 내년 의료 수가가 1.98% 인상돼 약 1조 원 이상이 빠져나간다. 또 9월에 개편될 새 건보료 부과 체계로 약 2조9,000억 원의 손실과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의료·방역 지원비도 추가로 발생한다.
코로나19 관련 비용은 국고 지원이 원칙이지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앞서 3월 건보 재정으로 우선 지원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국고 대신 국민이 낸 보험료로 막은 것인데, 코로나19 3년간 건보 재정에서 나간 돈만 약 3조500억 원이다.
시민단체는 일몰 조항 삭제와 사후 정산 제도 도입으로 정부 지원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2007년 이후 사실상 정부 지원이 굳어진 상황이라 법 조항이 사라지면 국민이 온전히 떠안게 된다"며 "정부 지원 20% 규정을 영구화하거나 과소 지원한 부분은 사후 정산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동민·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원 규정을 명확히 하고 차액을 보전하는 내용을, 정춘숙 민주당·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한시법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