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노이드는 인공지능(AI)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AI를 이용한 건강관리와 진료 보조 등 AI 의료 서비스,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아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노코드 도구 등 AI와 결부된 다양한 사업을 한다. 궁극적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 AI 생태계를 만드는 AI 플랫폼 사업이 목표다. 그만큼 숙련된 AI 기술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업체는 10년 이상 갈고 닦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으로 입성했다. 하지만 성공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최우식(53) 대표의 남모를 눈물과 고통이 숨어 있다.
최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직접 납땜하며 전자부품을 만들었다. "컴퓨터 잡지에 서울대생들이 만든 로봇 쥐 기사를 보고 실습용 부품을 사서 납땜을 하며 만들다가 방바닥을 태워 어머니에게 많이 혼났죠."
전공도 연세대에서 전자공학을 택했다. "운수 사업을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학 때부터 사업에 관심을 가졌죠. 기술 기반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사업을 위한 경험을 쌓으려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한화그룹의 한화정보통신에서 휴대폰을 개발했어요. 당시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에 뛰어들었던 한화에서 2세대(G) 휴대폰을 만들었죠."
이를 계기로 그는 1년 뒤 삼성전자로 옮겨 국내 이동통신 발전에 획기적 기여를 했다. "세계 최초로 3G 상용화를 원한 정부에서 관련 기업 연구원들을 뽑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파견 보냈어요. 3년간 ETRI에서 3G 이동통신인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기술을 연구해 2002년 세계 최초로 3G 상용화를 하고 퇴사했죠."
6년간 몸담은 삼성을 떠난 그는 바로 중국 선전(深圳)으로 건너가 휴대폰 개발업체 애플톤을 창업했다. "중국 2위 이동통신업체 차이나유니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손잡고 휴대폰을 개발했어요."
미국이 아닌 중국을 택한 이유는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어도 한마디 못 하고 연고도 없었지만 경제적, 기술적으로 미국보다 만만해 보였어요. 당시 중국은 우리보다 기술이 크게 뒤처진 만큼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여기에 중국이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큰 시장이 될 것으로 봤어요."
마침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홍콩 휴대폰 유통업체에서 선뜻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 조건이 중국 창업이었다. "투자업체는 화웨이와 함께 휴대폰을 만들어서 홍콩 증시에 상장하기를 원했어요."
이때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공동 창업자들의 국내 집에 들이닥쳤다. 국가정보원 연락을 받은 검찰이 기술 유출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내 휴대폰 개발자들이 중국에 대거 진출해 기술 유출 우려가 컸어요. 중국에서 수억 원 연봉을 주고 3G 기술을 주도했던 ETRI 연구원들을 데려갔죠. 사실상 한국 개발자들이 중국 휴대폰 산업의 근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창업자들은 3일간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았다. "왜 중국에서 창업했는지 집중 조사를 받고 기술 유출 혐의를 벗었지만 엄청 무서웠어요. 가족들까지 잔뜩 겁을 먹었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국정원에서 귀국을 종용했다.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죠."
최 대표는 개발을 완료해 시제품까지 나온 휴대폰 사업을 그렇게 포기했다. "1년 3개월 만에 사업을 접으며 억울하고 분했어요."
2003년 허탈하게 귀국하고 나니 사업할 용기가 사라졌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죠. 5년 동안 LG전자 협력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3G 휴대폰을 개발했어요."
시간이 흘러 피우기도 전에 접은 사업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독일업체에서 개발자 제안이 들어왔지만 지금 아니면 평생 사업을 하지 못할 것 같아 창업을 결심했죠."
최 대표는 2008년 사업 아이템도 없이 무작정 오비에스코리아를 창업했다. "사업에 대한 갈망이 커서 먼저 창업하고 사업 아이템을 찾았어요. 사명의 OBS는 그런 마음을 담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의 오픈비즈니스솔루션의 약자죠."
창업 후 매일 인터넷을 뒤졌다. "휴대폰 분야는 너무 오래해서 넌덜머리가 났고, 이미 수십 개 회사가 경쟁하는 레드오션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했죠."
첫 사업은 인터넷전화였다. 전화기에 액정화면을 부착해 정보를 주고받고 광고를 내보내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KT 자회사인 KTH 협력사로 참여해 기술을 개발했어요. 그런데 KT의 대대적 조직개편으로 사업이 무산되며 손해를 봤죠."
그때부터 하청을 받아 기술을 개발하는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지하철 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를 제어하는 기술, 반도체와 방위산업 장비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개발 등 대기업 주문을 받아 기술들을 개발했으나 모두 손해봤다. "대기업에서 협력사로, 거기서 또다른 협력사로 줄줄이 내려오는 재하청을 받아 일을 하니 힘들게 개발해도 남는 게 없었죠. 그렇게 창업 후 7년간 손해만 봤어요."
연거푸 사업 실패하며 깨달은 것은 남들이 하는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아무리 남들보다 싸게 잘 만들어도 기득권 있는 시장에서는 성공하기 힘들어요. 시장을 선점한 기득권자가 생태계를 좌우하죠. 자본 없이 기술력만 갖고 뛰어들었다가 수십억 원을 까먹고 배운 교훈이에요."
최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기 위해 등산을 다녔다. 그때 고교 등산모임에서 AI를 알게 됐다. "마지막 사업으로 AI를 택했죠. 이마저 실패하면 더 이상 이승에서 사업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죠."
그는 2015년부터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1년간 AI를 연구했다. "매일 유튜브로 딥러닝 강의를 들으며 AI 사업 방향을 잡았어요. 구글의 AI '알파고'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보고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투자를 받았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를 들고 가서 조선소 설립 비용을 마련했다잖아요. 그런 식으로 투자사를 설득했죠."
최 대표는 투자사 심사역과 등산을 갔다. "어디 갈 곳도 없는 산 위에서 두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했어요. AI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죠. 묵묵히 듣던 심사역이 투자하겠다더군요." 그렇게 그는 아주인베스트먼트, 코리아오메가, L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130억 원을 투자받아 개발자를 뽑고 AI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정한 사업이 ‘딥파이’라고 이름 붙인 AI 플랫폼이다. "AI 생태계를 만들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봤어요.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개별 기술업체는 더 큰 곳에 흡수되거나 망할 수밖에 없죠."
시작은 AI를 이용한 의료 사업이다. "의료 데이터를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분류해 이름을 붙이는 레이블링 사업 '딥라벨'을 먼저 시작했죠. 주변에 의사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의료 데이터를 AI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어요."
이렇게 쌓인 의료 데이터를 토대로 의사가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판독하는 일을 돕는 AI 의료영상판독시스템 '딥팍스'를 개발했다. 딥팍스는 15개 질환 관련 영상판독을 돕는다.
이후 의사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노코딩 솔루션을 만들었다. 노코딩은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부산대와 협의해 의대 정규과목으로 편성했다. "의료 AI 사업이 잘되려면 의료 분야를 잘 아는 의사가 개발을 주도해야죠. 그래서 의사들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코딩 솔루션을 만들었어요."
여기에 '딥스토어'라는 온라인 소프트웨어 장터도 만들었다. "딥스토어는 노코드로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고팔 수 있는 장터죠."
이렇게 딥라벨로 의료 AI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AI 의료영상판독시스템이 학습하는 기초 생태계를 만들었다. 여기에 노코딩 솔루션까지 올해 말 하나로 결합되는 구조다. "다른 업체들은 이런 기능들이 별도로 분리돼 있지만 딥파이는 하나로 묶은 것이 차별점이자 장점이죠."
딥노이드는 일련의 AI 기술로 지난해 8월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을 했다.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개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상장했죠. 요즘 증시가 좋지 않아 덩달아 주가가 떨어져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요."
실적도 아픈 부분이다. 기술업체인 만큼 개발비가 많이 들어서 아직은 적자다.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하고 생태계를 만들어야죠. 매출은 지난해 약 10억 원이고 올해 40억 원 이상이 목표입니다."
앞으로 최 대표는 12개 질환의 진료를 AI가 돕는 맞춤형 진료보조 솔루션 '닥터 앤서 2.0'과 김포공항 등 전국 공항에서 보안검색에 활용하는 AI 영상판독시스템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공항공사의 전국 공항에 화물 보안검색을 AI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공급했어요. 최근 관세청에도 공급해 진품 여부를 AI가 가려내죠."
그의 목표는 딥파이가 AI의 대명사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카카오톡이 메신저 대명사가 된 것처럼 딥파이를 AI의 대명사로 만들고 싶어요. 이를 위해 AI를 의료 외에 국방,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