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이해충돌방지법상 제출해야 하는 3년간의 김앤장 법무법인 활동 내역을 단 ‘두 줄’로 신고한 데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총리가 부실한 자료를 냈다”며 직원들에게 개선방안을 강구할 것을 질책했다고 한다. 이 법이 유예기간을 거쳐 5월 19일 시행된 후 ‘1호 신고자’가 부적절한 행태를 보이자 주무부처로서 당연한 반응을 낸 것이다. 한 총리는 취임 전 4년 4개월간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며 약 20억 원을 받아 국회 청문회 때도 논란이 됐다. 법무법인들은 고위공직자를 데려와 ‘전관예우’를 무기로 이권에 영향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8년여의 진통 끝에 탄생한 성과다. 공무원 윤리강령을 위반해도 내부 징계에 그쳤지만 이젠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 법은 사적 이해관계가 직무수행에 저해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첫 총리가 법의 취지를 버젓이 무시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총리는 A4용지 한 장에 ‘국제통상환경, 주요국 통상정책 연구분석 및 소속 변호사 자문’ 등 내용이 아닌 목차나 다름없는 두 줄을 적어 냈는데 어떻게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하라는 건지 황당한 일이다. 향후 관행이 돼 수많은 공직자가 따라 할 위험성이 크다.
제도상 실효성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 총리는 내역서를 지난달 20일 국무조정실 이해충돌방지 담당관에게 제출했다. 서류가 미비해도 과장급 직원이 총리에게 보완을 요구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마침 이해충돌과 관련해 해당기관이 아닌 권익위에 신고·제출하도록 하는 개정안(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허점을 즉시 개선해야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공직사회의 투명성이 많이 높아졌지만 한 총리의 불성실한 자료제출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새 정부 출범 후 사퇴 압박을 받는 권익위원장의 ‘몽니’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