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0일 목요일마다 열던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경북 경주의 월성원자력본부를 방문했다. 당내에서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사퇴 압박으로 고립무원에 놓인 이 대표의 처지를 보여주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원전 세일즈'에 힘을 쏟고 있는 것과 맞물려, 이 대표가 성상납 및 증거인멸 의혹으로 촉발된 위기 국면을 '윤심'에 호소해 돌파하려는 시도 아니겠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친윤석열계인 박성민 당대표 비서실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 온 박 비서실장은 양측의 밀월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당장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손절'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이 대표 스스로도 이 같은 해석을 적극 부인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월성 원전 맥스터 현장 시찰을 마친 뒤 '박 비서실장 사퇴가 윤심이 떠난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뭐 그런 해석은 가능하겠지만, 어제 박 의원과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초 이날은 국회에서 최고위가 열리는 날이지만 이 대표는 일정을 바꿔 지역 현장 방문을 택했다. 다른 최고위원 어느 누구도 동행하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 측이 당 지도부 갈등 상황이 재현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한 게 아니겠냐"고 본다. 중재자 역할을 할 권성동 원내대표마저 필리핀 대통령 축하 사절로 출국해 자리를 비우면서 윤핵관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당 안팎에서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경찰이 조만간 이 대표를 소환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며 "지금 이 대표 리더십을 흔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해 온 중립 성향 의원들도 이 대표가 더 버티긴 힘들어졌다고 보고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대표직 사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날도 본인의 거취 문제가 거론되는 데 대해 "(대표직을 사퇴하는) 그런 경우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 대표 측은 특히 윤핵관의 마음과 '윤심'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거듭 전하고 있다. 윤심이 아니라 장제원 의원이 당내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해 '이준석 고립 작전'을 펴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시각이다. 이 대표는 전날 포항에서 박 비서실장을 만난 뒤 페이스북에 "뭐 복잡하게 생각하나. 모두 달리면 되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라고 썼다.
윤핵관을 향한 항전 의지를 불태우지만, 윤 대통령과 거리를 좁히려는 모습이다. 이날 원전 시찰에서도 이 대표는 "이번 정부에서는 안전하면서도 원전 가동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을 옹호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를 꼽을 만큼, 월성 원전은 윤 대통령의 '탈원전 폐기' 기조를 상징하는 곳이다.
향후 이 대표의 입지를 결정할 분수령은 당 윤리위 개최 하루 전인 내달 6일로 예정된 '고위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 회의'다. 해외순방 성과 설명을 겸할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포용하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흔들리는 이 대표의 리더십도 안정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고위 당정대 회의가 윤리위 이후로 다시 한번 연기되거나, 윤 대통령이 불참할 경우 국민의힘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당내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당 일각에서는 대통령실이 이날 당정대 회의 명칭을 당정협의회로 변경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윤심은 이미 떠났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