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체코ㆍ캐나다 등과의 정상회담을 끝으로 2박 3일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파트너국 정상회의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참가한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일본의 관계 개선 의지 확인, 나토 회원국 및 인도태평양 파트너국과의 협력 강화, 원전ㆍ방산 등 세일즈 외교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게 대통령실의 자평이다. 다만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노골화한 나토의 신전략개념에 사실상 동참하면서 앞으로 양국과 원만한 관계 유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됐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4차례 만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했다. 특히 지난달 28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주최한 만찬에서는 기시다 총리와 만나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한일 간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국 내 선거를 앞둔 기시다 총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 차원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이에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위해 노력해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사의를 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짧고 가벼웠지만 핵심적인 대화”라며 “일본 총리를 직접 만나니 꽤나 개방적이면서 한국에 대해 기대도 크고 잘해 보려는 열의가 표정에서 느껴졌다”고 전했다.
양국 정상이 서로 관계 개선 의지를 주고받음에 따라 이제 실무 협의만 남은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보텀업(상향식)이 아니라 톱다운(하향식)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이미 정상 간에는 대화 준비가 다 돼 있는 것 같다. 남겨진 과제는 참모들과 각 부처가 얼마나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발전시켜나가느냐”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최대 성과로 꼽는 건 경제안보 외교다. 윤 대통령이 직접 각국 정상들을 만나 우리의 원전과 방산 기술을 홍보했고 조만간 성과가 예상된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원전과 관련해 사업자 선정이 임박한 체코와 폴란드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 자리에서 한국 원자력 발전 홍보 책자를 직접 건네며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직접 어필하기도 했다. 체코와 폴란드 모두 2022~2024년 중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방산 분야에서는 폴란드와 양자 대화가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 수석은 “지난 5월 30일 폴란드 국방장관이 방한해 K-2전차, K-9자주포, 레드백 장갑차 등 우리 무기 체계를 실사했다”며 “양국 정상 간 회담을 통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고, 세일즈 외교의 첫 번째 성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민주주와 법치를 핵심으로 하는 '가치 연대'를 통한 나토와의 관계 설정도 이번 순방의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총 16건의 외교일정을 소화하면서 계기 때마다 ‘가치 연대’를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도 “자유민주주의, 법치 기반 위에 설립된 나토와 변화하는 국제안보 환경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과 가치규범을 공유하는 국가들과는 지역을 넘어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마드리드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글로벌 안보평화 구상이 나토의 2022 신전략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라는 말로 이번 순방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이번 순방 기간 사실상 반중ㆍ반러 노선으로 기운 나토의 신전략개념을 공유하면서 외교적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론, 국제사회에서 높아지는 중국의 책임성에 대해 원론적인 동의를 표명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더욱 선명해질 경우 오히려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의 자율성이 제약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반중 노선이라기보다 어떤 나라도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룰과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최소한 국제사회에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