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11시마다 전기로(爐) 전원을 직접 켜기 위해 직원이 출근해야 했는데,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 뒤론 이 작업이 사라졌어요. 기계가 정해진 시간에 알아서 돌아가기 때문에 더 이상 어두컴컴한 밤에 졸린 눈을 부비며 위험한 설비가 가득한 공장에 들어가 전원 버튼을 켜지 않아도 되죠."
지난달 27일 스마트 공장 도입 후 달라진 점을 설명하는 박민기(39) ㈜삼창선재 대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우리 공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기로 온도를 담당 직원의 '감(感)'에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에 따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창선재는 건설자재 중 하나인 철강선을 제조하는 업체다. 연매출 95억 원에 직원 2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 데는 박 대표의 절박함이 컸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물밀 듯 들어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면서 '이러다 다 죽겠다' 싶었던 것.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사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시스템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솔직히 처음엔 스마트 공장이 뭔지 잘 모르는 채로 무턱대고 신청했는데 첫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두 번에 걸쳐 스마트 공장을 도입했다. 첫 번째 시도는 2018년이다. 콘크리트 거푸집 고정용 핀을 제작하는 프레스를 유압 프레스로 바꾸면서 데이터 생성 및 전송, 기록 등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구축했다. 기존 프레스는 직원들이 손수 기계에 판을 넣고 찍어 내야 했기 때문에 부상이 잦았다. 프레스 숙련공치고 손가락이 멀쩡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공장에 처음 온 프레스 담당 직원도 이미 손가락 2개가 없었다. 게다가 결과물을 일일이 세는 번거로움도 상당했다.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 뒤론 이 같은 위험과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유압 프레스가 알아서 핀을 찍어 낸 뒤 개수를 세어 컴퓨터로 전송해주기 때문이다. 몇 개가 생산됐는지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해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음은 물론, 재고량 파악도 손쉬워졌다.
한 번 해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해엔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중앙회, 포스코와 함께 상생형 스마트공장에 도전했다. 상생형 스마트공장은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과 협력해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면 정부가 구축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번엔 핵심 설비 중 하나인 전자로 부분에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도입했다. 박 대표는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로 온도에 따라 철선의 강도가 달라지는데, 전기로 온도는 외부 온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섬세한 조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조작하고 기록하다 보니 정작 필요한 때 정확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요즘같이 기온이 들쑥날쑥한 때는 사실상 담당자의 '감(感)'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한 번에 제대로 열처리를 하지 못해 재가열한 적도 있고, 아예 다 타 버린 적도 있다"며 "버리면 한순간에 1,500만 원이 날아간다"고 말했다. 재가열 또한 만만찮은 전기료가 든다.
설비를 바꾸고,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면서 환경은 180도 달라졌다. 설비를 PC나 휴대폰으로 제어할 수 있어 전기로에 이상이 생기면 재빠르게 시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깥 온도와 습도에 따른 전기로 온도와 철선의 강도가 자동으로 기록돼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덕분에 생산성은 2.5배 향상됐고, 에너지 효율이 좋아져 전기료가 kg당 10원 정도 줄었다. 한 달에 600톤~700톤 가량을 생산하니 월 600만 원 정도를 절약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전기료 부담이 커지는 시기에는 엄청난 이점이다. 고용도 늘었다.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구축되면서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관리자급 직원을 한 명 채용했다. 박 대표는 "기계가 자동화되면 고용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사람이 직접 생산에 관여하는 대신 생산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이에 해당하는 인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마트 공장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건 아니다. 박 대표가 속한 철선공업협동조합의 50개 회원사 중 스마트 공장을 도입한 곳은 3, 4곳 뿐이다. 모두 40, 50대 젊은 대표가 있는 곳이다. 대부분은 대표 나이가 60, 70대라 컴퓨터 조작이 필요한 새 시스템 도입을 꺼린다. 이들에겐 스마트 공장 도입을 신청하기 위한 서류 작업도 쉽지 않다. 이미 수십 년 동안 몸으로 하는 노동에 익숙해진 고령의 직원들 또한 새 시스템을 반기기보다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운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30년 이상 된 구형의 수동 장비로는 스마트 공장을 구축할 수 없어 설비 교체가 필수인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정부 지원금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구축에 들어가기 때문에 설비 교체 비용은 기업이 마련해야 한다. 박 대표 또한 1·2차 통틀어 설비 교체에만 2억 원 이상의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스마트 공장을 하면 좋다는 걸 다 알면서도 비용 등 측면을 고려하다 보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중국 저가 제품과 원자재가 상승 등으로 흔들리는 뿌리산업이 스마트 공장 도입을 통해 탄탄한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섬세하게 살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