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와 선생님 사이, 요양보호사

입력
2022.06.30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요즘 여고 동창들은 마트 계산대가 아니라 요양보호사 학원에서 만난대요. 아닌 게 아니라 학원에 등록해보니 진짜 그렇더라고."

7월 1일 요양보호사의 날을 앞두고 만난 50대 여성은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여성들이 경력 단절 후 나이가 들어 택하는 직업, 즉 재취업 수단이 대형마트 점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옮겨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여성 역시 몇 년 전까지 대형마트에서 일했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벌써 친구 여럿이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국가공인 자격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는 귀띔이었다. "평생 이 일 저 일 되는 대로 해왔는데, 자격증이 있으면 하나의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 요양보호사 지망생이 곧 뛰어들게 될 돌봄 현장은 기대와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평균 연령 58.9세로 여성 비율 90%인 '중·고령 여성의 일자리' 국내 요양보호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짧은 2년 수준(OECD·2020년)이다. 절반 이상이 시간제 계약직으로 2020년 기준 월평균 근무시간은 108.5시간, 평균임금은 114만 원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생기기 전 가정 내에서 돌봄을 책임졌던 중년 여성들은 이제 집 밖에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돌봄은 이들을 '갈아서' 돌아간다.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꼭 아줌마라고 부른다니까요." 3년차 요양보호사는 이렇게 한탄했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이후로는 '저기'라고 부르거나 아예 호칭을 생략하곤 한다는 것. 곧 죽어도 선생님이란 존칭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심리에는 멸시가 깔려있다. 이런 무시가 낳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부당한 업무 외 지시나 성희롱, 폭언, 폭행은 너무 흔해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할 지경이다. 2008년 7월 1일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고 이듬해 요양보호사의 날이 제정됐지만, 13년째 별다른 보호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을 정도로 사회의 관심 밖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장의 많은 요양보호사는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요양보호사는 '이론과 실기, 현장실습 240시간에다가 국가시험 이후로도 매년 직무교육을 듣는 전문가'라고 강조한 10년차 요양보호사는 "대상자도 아줌마 아닌 전문가에게 돌봄을 받는 게 더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면 당연히 질 좋은 돌봄을 받고 싶다.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는 '아줌마'와 적절한 근무시간과 보상을 받는 '선생님' 중 누가 더 정성을 들인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뻔한 일이다.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결국 우리의 노후와 맞닿아있다.

인터뷰를 했던 10년차 요양보호사는 이후 기자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내왔다. 그가 소망을 담아 쓴 편지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2012년 7월,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른 국가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자랑스러운 요양보호사가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최저 시급에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운명은 전혀 예감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요양보호사의 날, 그저 수고한다는 말뿐인 격려는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돌봄노동이 경력단절 여성 노동자의 가사노동으로 저평가되지 않고 건강한 사회로 이끄는 소중한 노동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