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고성 북쪽에 흑룡담(黑龍潭)이 있다. 천천히 걸어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옥룡설산에서 흘러나온 수분이 밀려와 연못을 만들었다. 민간에 ‘오룡진문(五龍進門), 부귀불수(富貴不愁)’라는 말이 있다. 청룡·적룡·황룡·백룡·흑룡이 들어오면 부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바람이다. 오행에서 흑(黑)은 수(水)에 속하니 물이 풍부한 곳에 흑룡이 자주 등판한다. 오곡이 풍부하려면 오룡이 필요했다. 토템인 용이 바람과 비를 관장한다고 믿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도랑이 이어지고 연못 옆에 용신사(龍神祠)가 나온다. 청나라 건륭제 시대인 1737년에 건축했다. 손으로 떠서 마셔도 될 만큼 맑다. 유리처럼 투명해 유영하는 물고기의 비늘도 선명하다. 용왕이 솟아오르는 상상도 해봄직하다. 봉긋한 돌다리와 누각, 정자가 연못 주위를 두르고 있다. 어느 위치에서도 정갈한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 설산으로 향한 시선이야말로 최고의 경관이다. 설산에서 뿜는 순백의 신호가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리장고성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자 문제가 불거졌다. 시끄러울 뿐 아니라 지저분하고 난잡했다.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을 취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광 부서는 기다렸다는 듯 ‘고성보호비’를 받기 시작했다. 고성은 성문이 없어 입장료를 받기가 애매한 구조다. 옥룡설산이 희생양(?)이 됐다. 리장으로 들어오는 관광객 대부분은 설산을 꼭 본다. 고성보호비를 내지 않으면 톨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 설산 입장료와 버스, 케이블카까지 포함하면 비싼 편이지만 어쩔 수 없다. 고성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 걸려 간하이쯔(甘海子)에 도착한다. 해발 3,100m 지점이다. 설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설산 코스는 세 군데다. 해발 4,680m까지 오르는 대삭도(大索道) 구간은 여러 이유로 아직 올라가지 못했다. 운삼평(雲杉坪)과 모우평(牦牛坪)도 있다. 설산 전용버스를 잘 찾아야 한다.
먼저 운삼평으로 간다. 6㎞ 거리를 꼬불꼬불 올라 남월곡(藍月谷) 주차장에 도착한다. 개인차나 날씨에 따라 다르나 고산 반응이 슬슬 100m 출발선에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버스에서 하차해 바로 옆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8명이 탈 수 있다. 가파르게 솟아오르는데 5분이면 도착한다. 창문 밖으로 나무가 슬쩍 지나간다. 설산은 요지부동이다.
끝이 아니다. 1㎞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걸을 수도 있지만 전동차가 있다. 무리하게 걷다가 고산 반응에 고생할 수도 있다. 숲길을 헤치고 후다닥 빠르게 이동한다. 드디어 운삼평 도착이다. 해발 3,240m이고 풀이 드문드문 자라는 초원이다.
양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다가가면 친근하게 달라붙는다. 전혀 낯을 가리지 않고 친구가 찾아온 듯 반갑게 맞아준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한 바퀴 도는 인도에 말뚝을 박아 놓았다. 갈 때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한데 설산은 초지일관이다. 하얗게 옷을 입고 늘 그 자리를 지킨다.
세차게 바람이 부니 설산 위로 무언가 솟아오른다. 구름일까 눈일까 헷갈린다. 가끔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눈을 감고 운삼평에 전래되는 전설을 생각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죽은 순정(殉情)이다.
목장에서 일하던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주인의 질투와 시기를 견디지 못해 가까스로 설산으로 도망쳤다. 청년 집안의 반대와 모욕으로 상처받은 아가씨는 나무에 목을 맸다. 뒤늦게 알게 된 청년이 화장하는 불길에 뛰어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양산백과 축영대’다. 나시족의 장편 서사시 ‘노반노요(魯般魯饒)’를 요약했다. 민간에 ‘당대에 사랑으로 인해 죽으면 삼대 째 황제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슬픈지 아름다운지 구분이 어렵다.
1시간이 지나자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설산과 눈 맞추는 일도 충분했다. 전동차와 케이블카로 차례로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탄다. 근처에 있는 백수하(白水河)로 이동한다. 설산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채우고 있다. 고인 물이 층층이 포개진 석회암을 따라 하강한다. 아래로 갈수록 옥색으로 분장한 듯 영롱하게 변색한다. 하늘과 설산을 물감처럼 섞은 색깔은 아니다. 짙푸르게 자란 나무숲이 한몫하는 걸까? 위아래 물빛이 이렇듯 다양하다.
백수하에서 산으로 13㎞를 올라가면 모우평(牦牛坪)이다. 케이블카는 운산평보다 훨씬 가파르고 길다. 1.2㎞에 이르며 수직으로 360m를 올라간다. 시간도 20분이나 걸린다.
봉우리를 넘자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던 설산 풍광이 활짝 펼쳐진다. 해발 3,800m에 위치한 초원이다.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눈이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에 남았다. 고원의 언덕은 생각보다 가파른 등산이다. 계단 끝에 티베트 사원인 설화사(雪花寺)가 있다. 설산을 수호하라고 만든 사원만은 아니다. 목축으로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약 200년 전에 건축됐고 윈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원이다.
백수하를 거쳐 다시 간하이쯔로 내려온다. 옥룡설산 고원보다 더 매력이 넘치는 공연이 있다. 고성보호비는 어쩌면 설산보다 공연을 면죄부로 삼는지도 모른다. ‘인상리장(印象麗江)’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해발 3,000m에 위치한 실경 무대다.
장이머우 사단인 왕차오거와 판위에가 연출한 ‘인상’ 시리즈의 하나다. 나시족을 비롯해 소수민족 수백 명이 배우로 참여한다. 오후 1시 지나 시작되며 성수기에는 하루 3회까지 공연한다. 배우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등장하면 무대와 설산이 어우러져 하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푸른 하늘과 구름이 흐르는 날이라 예상보다 훨씬 꿈결 같다.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호흡이 거칠어진다.
1시간가량 진행되는 공연은 여러 테마가 섞여있다. 차마고도의 마방이 휩쓸고 지나면 청년들이 술을 마시며 설산의 혈기를 뽐낸다. 남녀가 술을 마시며 놀다가 사랑이 싹튼다.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죽은 연인의 전설도 표현한다. 손에 손잡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가 열리고 제천 행사와 설산을 향한 기복 의식까지 이어진다.
마당에서 연기가 이뤄지고 무대를 오르내리기도 한다. 꼭대기에 만든 통로를 말 타고 달린다. 관중석에서 갑자기 북을 치고 춤도 춘다. 위와 아래 옆과 뒤까지 전체가 공연장이다. 설산이 장엄한 무대 그 자체다.
마지막 기복 의식은 관객과 함께 한다. 대장이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먼저 두 손을 교차해 이마에 댄다. 눈빛은 아득히 머나먼 설산을 바라본다. 고개를 더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한다. 양팔 벌려 높이 들고 마음에 담은 소원을 희망하라고 외친다. 그리고 대사가 이어진다. "신비로운 설산 앞에서 우리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사방팔방에서 찾아온 사람들 소원 모두 이뤄지리라." 다시 설산을 찾아오길 기다린다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또 오라는 말이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같아 언제나 감동이다. 여러 번 본 공연인데 늘 숙연해진다. 징과 북이 앞서고 오복관(五福冠)을 쓴 나시족 동파(東巴)가 등장해 작별인사를 한다.
설산 입장료에 포함된 동파만신원(東巴萬神園)으로 간다. 나시족 종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붉은 모자 쓴 동파와 아가씨들이 광장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울려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설산 방향으로 신로도(神路圖)가 있다. 두루마리로 전래되는 그림을 길이 240m, 너비 6m 부조로 꾸몄다. 망자의 영혼이 지나가는 길을 상징한다. 지옥, 인간 세상, 자연계, 천당까지 4단계로 구분돼 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살핀다. 알 듯 말 듯한 장면에 멈추기도 한다. 얼핏 봐도 모르면 한참을 봐도 소용없다. 신화와 종교 이야기는 물론이고 생로병사와 권선징악을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별의별 휘황찬란하고 기괴한 그림이 많다. 인간과 신, 귀신을 합쳐 370여 군상이 출몰한다. 의인화돼 쉽게 이해가 될만도 한데 도통 아리송하다. 동파교의 세세한 내용을 알기 어려워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다.
신과 귀신이 아닌 인간이 사는 세상은 쉬운 편이다. 사지와 온몸을 찌르고 있는 형벌을 보면 섬찟할 정도다. 불법과 불륜처럼 그에 상응하는 처벌도 아주 잔인하다. 가혹할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돼 오금이 저리다. 만신이 우글거리는 공간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동파교 신자이자 나시족에게만 해당하는 교훈이라고 애써 마음을 달랜다.
기괴한 동물도 70여 종이 출현한다. 서로서로 연관된 이야기가 꾸며져 있는데 비유가 대부분이다. 점점 오르막길 따라가다가 머리가 32개나 되는 코끼리가 눈에 밟힌다. 하나 둘도 아니고 수많은 시선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라 조금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생뚱맞은 그림이라 속 깊은 이해는 어렵다. 왜 코끼리 머리가 이리도 많을까? 설산의 냉기에 정신을 차리고 봐도 늘 숙제다. 그냥 해학 넘치는 동물이라는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오복관이 군데군데 꽂혀 있다. 지혜를 지닌 전승자인 동파가 머리에 쓰는 모자다. 동파가 가진 권위를 상징한다. 산·수·일·월·풍·우·목·금 등 자연 현상과 물질을 두루 새겼으며 불멸의 영혼과 길흉화복을 담고 있다. 만물의 속성에 전지전능하고 이치를 전승하는 자의 권능을 상징한다.
만신이 다 나타나도 좋다. 설산 아래 싱그러운 자연 세상에 살포시 자리 잡은 종교가 친근한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여행을 위해 찾아온 자는 그저 신비로운 감상에 젖는다. 상쾌한 공기 덕분에 자연의 신비를 숭배하는 수많은 기호가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다.
신로도 끝에 벽화가 있다. 동파문으로 그렸는데 볼수록 귀엽다. 심오한 느낌도 있다. 동파교에도 경전이 있어 창세기를 구현한 벽화다. 우주는 혼돈, 천지는 하나, 아직 해와 달과 별이 없던 시기의 신화다.
민족마다 하늘이 열리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 상형문자로 새겨져 그런지 그저 웃으며 바라볼 뿐이다.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화를 글자가 아닌 그림 같은 상형으로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다. 창세기는 어느 종교라도 비슷하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아무리 봐도 하늘과 땅이라고 쓴 문자를 찾을 길이 없다.
바로 옆 1㎞ 거리에 옥수채(玉水寨)가 있다. 고성의 수원이다. 금빛보다 찬란하게 빛을 뿜는 신상(神像)이 생명의 근원인 물을 수호하고 있다.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뱀인 반인반사(半人半蛇)다. 동파교 신화에서 인간과 뱀은 형제였다. ‘인간과 자연은 일체’라는 상징을 지닌 자연신이다. 나시족은 서(署)라 부르고 제서(祭署) 의식을 치른다. 동으로 주조하고 금을 입혔다. 동으로 만든 표주박이 몇 개 있어 물을 떠서 마셔도 된다.
자연신이 품은 물은 아래로 흘러 샘물을 만들었다. 너무나도 깨끗해 투명 유리를 보는 느낌이다. 송어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고 관광객이 던진 동전이 바닥에 수북하게 흩어져 있다. 손때까지 다 씻고도 남을 물의 기운이 분출하고 있다. 설산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가끔 수면을 불투명 유리로 바꿔도 청아한 물빛은 그대로다. 샘물은 아래로 슬슬 이동해 물줄기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고 고성으로 휘돌아간다.
옥수채 뒤에 동파묘(東巴廟)가 있다. 오색 천을 두른 천향로(天香爐)가 거대한 탄알처럼 서 있다. 절묘하게 돌로 쌓았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제례를 할 때면 사람들이 빙빙 돌고 돈다고 한다. 계단 양쪽으로 오르면 북과 종이 있는 누각이 있다. 동파교 신화에 등장하는 티바세라(丁巴什羅)를 봉공하는 전각이다. 형제 사이인 인간과 뱀이 싸울 때 대붕을 파견해 쟁투를 벌린 끝에 둘을 화해시킨다. 둘은 인류와 자연신이 됐다.
자연신은 인류가 자연을 중시하지 않고 훼손하자 화가 났다. 나무를 벌목하고 야생동물을 수렵해 강물을 피로 물들이는 만행에 분노했다. 인류와 끝내 화해하지 않았다.
티바세라는 강제 조정을 시도했다. 인류에게는 경작할 논밭과 방목할 목장, 가옥을 짓고 살 땅만 보유하라 했다. 살아가는데 충분한 땅을 제공했다. 나머지는 자연신의 영역으로 정했다. 자연신은 인류를 데리고 신천(神泉) 앞에서 제례를 올리도록 했다. 인류는 살생과 훼손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제사를 지내며 맹세를 이어갔다. 몸 아래에 뱀 머리를 세우고 무섭게 노려본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라는 경고의 눈빛이 매섭다.
옥수채 자연신이 품은 물은 3개의 층계를 타고 내려간다. 신룡삼첩수(神龍三叠水)라 부른다. 차례로 출룡폭(出龍瀑), 희룡폭(戲龍瀑), 송룡폭(送龍瀑)이다. 용이 나타나 놀다가 간다는 뜻이니 참 그럴싸하다. 옥룡이 내려와 옥수가 된 듯 어울린다.
온종일 흑룡담, 백수하, 옥수채에 푹 젖었다. 어디나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고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설산이 녹아 흐른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그런 물이 리장고성으로 흘러가니 매력이 넘칠 수밖에 없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꼽을 수밖에 없다. 옥룡설산이 있으니 두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