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회서비스원 소속 10년차 요양보호사 김영인(이하 모두 가명·60)씨는 거동이 힘든 사람을 목욕시키고 체위를 바꿔준다. 사람을 들어 올리고 씻기는 일, 허리·어깨·팔 등 온몸에 힘이 드는 일이다.
김씨는 "이렇게 힘쓰는 업무를 하다 보니 어깨와 허리 등에 근골격계 질환이 생겼다"며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김씨는 "집마다 보행벨트 등 보조도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복불복이라 일하러 갈 때는 허리에 복대를 손목에는 보호대를 찬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사비로 마련한 물품들이다.
사회서비스원의 요양보호사들은 갑작스런 위기 가정을 돕는 '돌봄SOS' 프로그램에도 파견된다. 김씨는 이사를 도맡은 적도 있다. 집 안에 바퀴벌레가 바글바글해 주변에서 쓰레기집이라 불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김씨를 비롯한 요양보호사들은 어떠한 도구도 없이 옷장 등 가구를 1층으로 옮겼다.
10명 중 8명이 일을 시작하고 질병이 생기거나 악화된 직업, 바로 요양보호사다. 7월 1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도입(2008년 7월 1일)을 기념해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선포한 '요양보호사의 날'이다.
보험 도입 14년이 흘렀지만 요양보호사의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일보가 만난 요양보호사는 "여기저기 골병 든 채로 일한다"고 입 모아 말한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면 산업재해로 인정, 보호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는 이런 사회적 안전망에서 거의 벗어나있다. 왜일까.
김씨는 "현장에서 어르신을 돌보다 다친 게 아닌 이상 산재를 내도 요양보호사의 나이를 고려해 퇴행성 질환으로 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라며 귀띔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미끄러져 다리를 삐끗하거나 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아닌 이상에야 산재를 신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실제로 2013년 척추관협착증 등의 진단으로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던 요양보호사는 퇴행성 질환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됐다. 또 다른 요양보호사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어깨통증으로 산재를 신청했으나 '여성이 50대가 되면 아플 때가 됐다'며 인정받지 못했다.
관련 연구('요양보호사의 산재에 대한 소고'·최다솜·2019)에서는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강도 높은 신체 노동을 요구하며 그에 따라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함에도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은 퇴행성 질환임을 강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아예 산재 신청 자체도 낮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이 올해 5월 사고와 질병 경험을 가진 271명의 요양보호사에게 물었을 때 산재를 신청했다는 답변은 공공과 민간 각각 6.7%(승인 6.7%·불승인 0%)와 9.1%(승인 7.7%·불승인 1.4%)로 모두 낮았다. 70% 안팎의 요양보호사는 개인 비용으로 처리했다.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은 59.6세. 노동자의 법정 정년(60세)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침 아플 때가 된 건가.
그렇지 않다. 전체 노인 인구의 근골격계질환 유병률인 53.9%에 비해 요양보호사 근골격계질환 증상 호소자는 98.1%(요양보호사 근골격계질환 실태 및 예방관리방안·2012년)에 달한다.
실제 요양보호사는 질병을 달고 사는 힘든 직업이다. 평균 60㎏ 무게의 사람을 맨몸으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옮긴다. 외출이나 목욕, 기저귀 교체 등을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가 소속 요양보호사 152명을 대상으로 올해 3월부터 한 달간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4.2%가 일을 시작하고 질병이 생기거나 악화됐다.
근골격계질환은 요양보호사의 '직업병'이다. 공공운수노조의 설문(중복 응답)에서도 손목·어깨 관련 질환(67.8%)이나 허리디스크(37.5%)를 호소하는 요양보호사가 많았다.
마음 역시 멍들어 있다. 서비스 대상자의 성희롱 및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이 적지 않았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요양보호사는 4명 중 1명(23.7%)꼴이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근골격계 부담 작업으로 '하루에 10회 이상 25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 또는 '하루에 25회 이상 10kg 이상의 물체를 무릎 아래나 어깨 위에서 들거나, 팔을 뻗은 상태에서 드는 작업' 등을 명시하고 있다.
야간에 혼자 돌보는 이용자 수가 평균 18.2명(민간 기준·서비스연맹 조사)인 시설 요양보호사나 목욕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이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
"설거지할 때 물을 몇 리터를 써야 하는지, 걸레는 어느 방향으로 몇 번을 접는지도 일일이 지시했어요."
요양보호사 이지후(58)씨는 방문요양서비스를 나갔다가 까다로운 요구에 진땀을 흘렸다. 서비스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새로운 일을 지시해 퇴근이 늦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불면증이 찾아왔고 출근만 생각하면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성희롱은 일상이다. 3년차 요양보호사 윤연주(60)씨는 방문목욕 서비스를 할 때마다 성희롱을 하던 남성 노인을 떠올리면 지금도 불안함에 심장이 뛴다고 했다.
이 같은 직무 스트레스도 산재의 유형이다. 그러나 이들은 산재는커녕 정신과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이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지만 망설여진다"며 "남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인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누가 내게 돌봄을 받겠다고 하겠나"라고 했다. 윤씨도 "혹시 기록으로 남아서 취직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꺼려졌다"라고 전했다.
민간 기관의 요양보호사는 1년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서비스 대상자의 변심이나 사망으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정도로 해고가 쉬워 혹시 모를 불이익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산재도 마찬가지다. 2018년 1월 산재 신청 시 사업주의 확인을 받도록 하는 사업주 날인제도가 폐지됐다. 그러나 여전히 사업장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양보호사 장민아(57)씨는 2019년 겨울에 대상자와 시장에 갔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산재 신청을 하려고 했으나 센터에서는 '공상처리'(근로복지공단이 아닌 회사에서 치료비 등을 보상하는 방식)를 권했다. 장씨는 "센터에서 그러라기에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장씨에게 '산재는 센터와 관계없이 노동자 혼자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줬으나 고개를 저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데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였다.
산재의 범위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3년차 요양보호사 곽진하(56)씨는 일을 시작하고 유독 어깨가 아파졌다. 오전·오후 전일제로 일하는 그는 이후 병원도 자주 다니게 됐다. 그러나 어깨의 통증으로 산재 신청을 생각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딱 잘라 답하더니 물어왔다. "이런 것도 산재가 될까요. 집안 일은 (요양보호사)일이 아니더라도 하는 건데…"
근골격계 질환은 대부분 처음에는 참을 만한 수준으로 찾아온다. 때문에 많은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일을 계속한다. 이런 인내가 결과적으로 산재 승인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퇴행성 질환이라도 업무 기인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되지만, 이전 질병 이력 중 유사한 증상을 경험한 기록이 있다면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다.
요양보호사 중에서도 시설이 아닌 가가호호를 방문하는 재가(방문)요양보호사가 더욱 보호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전체 요양보호사 중 86%는 방문요양보호사다. 요양보호사가 일하다 감염병에 걸려도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조승규 노무사는 "방문요양보호사 같은 호출형 노동의 경우 잦은 이동과 고정되지 않은 근무지로 인해 감염 원인을 명확히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요양보호사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지난해 열린 '좋은돌봄 서울한마당 정책토론회'에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들지 않기(No Lift)'를 제안하기도 했다. 임 원장은 "요양보호사의 근골격계 질환이 문제가 되지만 이에 대한 개선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호주의 경우에는 아예 법으로 환자를 직접 들어 올리지 않도록 했다는 것. 임 원장은 "미국 간호협회 등에서도 관련 제도를 협회 차원에서 홍보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이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개인이 산재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조 노무사는 “활동하면서 요양보호사 산재 상담이 드물어 처음에는 관련 재해가 없는 줄 알았다”면서 “몸이 아파도 산재보다는 실업급여가 가능하냐고 상담할 뿐 산재까지는 마음의 벽이 높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전지현 전국돌봄노조 사무처장은 "실제로 산재를 신청하려다가도 포기하시는 경우도 많다"며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되는 사례가 많아져야 요양보호사가 이런 직종이라는 점이 사회적으로 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산재를 대비해) 평소 일하면서 어떤 업무를 하고 또 노동 강도가 어떠한지 등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10년을 요양보호사로 일한 김영인씨는 "막상 자격증을 따서 일을 시작하고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손을 들고 나가는 경우를 자주 봤다"면서 "보람과 사명감으로 버티기에는 노동 환경도 열악하고 버는 돈도 생계를 책임지기엔 부족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아줌마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이 쉽지 않은 것 같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요양보호사 실태에 관한 토론회에서도 요양보호사 퇴직의 주된 이유로 부당한 업무와 낮은 처우, 성희롱이 꼽혔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220만6,730명 가운데 근무자는 53만9,631명으로 24.5%에 그친다.
요양보호사들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돌봄체계의 공공성 강화, 즉 국가가 요양기관 운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2020년 기준 전체 장기요양기관 2만5,384개소 중 국·공립기관은 244개소로 1%에도 못 미친다. 민간기관은 비용 절감을 우선시해 근로조건 하락 등을 통한 출혈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회서비스원 확충조차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회서비스원은 국공립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서비스 종사자들을 직접 고용해 돌봄의 질과 종사자 처우를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부산과 충북, 경북은 아직 사회서비스원이 없는 상태다. 2022년까지 모든 17개 광역시·도에 사회서비스원이 갖춰질 예정이었지만, 인천의 경우 시장이 바뀌면서 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고 대구에서도 보류·폐기 딱지가 붙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4월 노인돌봄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노인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민간 장기요양기관 주도의 노인돌봄체계는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적 저하 및 돌봄 공백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