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야 하는데...' '승진해야 하는데...' 인사 동맥경화에 술렁이는 관가
"하~ 발령이나 날 수 있을지, 어디에 알아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세종 정부부처의 공무원 A씨의 하소연이다. 국장 승진을 앞두고 지난해 2월 고위공무원단(고공단) 교육에 들어가 지난달 수료하고 인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전혀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A씨와 같은 중앙부처 고공단 교육 수료자는 매년 70~80명 수준으로, 이들은 1월 전후로 승진해 업무에 복귀하는데 현재 대부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1급이 차관으로 가고, 국장이 1급 되고, 예비 고공단이 교육 간다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없다"고 말했다. 12·3 불법 계엄 이후 공무원 인사 적체가 심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 차관급 등 정무직 인사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고위공무원단(고공단) 이하 승진·전보 인사마저 줄줄이 멈춘 것이다. 직업 공무원의 자부심과 의욕을 고취시키는 '승진'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관가의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민생 정책이 표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획재정부는 앞서 2일 자정쯤 "정부는 현재 차관급 등 고위직 인사를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정부가 조만간 기재부 차관을 포함한 정부 부처 고위직 인사를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급히 해명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고위직 공무원인 차관급 인사를 할 리가 없지 않느냐"며 "전혀 검토한 적 없다"고 못 박았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5급(사무관) 이상 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제청으로 인사혁신처장과 협의를 거친 후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 특히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은 대통령의 결정으로 임명되는데, 권한대행 체제에서 완전히 멈춘 것이다. 정부는 통상 연말에 차관급 인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고공단 승진 인사도 이뤄졌는데, 1급이 차관급으로 승진하고, 빈자리를 2급이 채우고, 또 2급의 빈자리를 3급이 승진하는 구조다. 기재부의 경우 2023년 12월 임명된 김윤상 기재부 2차관과 1급 3명이 재임기간 1년이 지나 승진하거나 외청 인사 대상이다. 탄핵 정국만 아니었다면 지난해 말 이들의 자리를 대신할 승진 인사를 시작으로 이달 말 과장급 정기 인사까지 마무리되는 게 수순이었다. 인사가 멈추면서 공석도 즐비하다. 고용노동부는 부처 내 '넘버 3'인 기획조정실장 자리가 6개월째 공석이다. 지난해 최현석 당시 기조실장이 대통령실 고용노동비서관으로 옮긴 이후 후임자를 정하지 못했는데 불법계엄 사태 탓에 공백이 더 길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권익증진국장이 6개월째 전담 직무대리 체계다. 자리를 채우기는 했지만 국장급이 해야 할 업무를 과장급이 맡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정책실장' 자리가 6개월째 비었다. 고위 공무원이 자리에 머물러야 하고, 승진 인사는 막히면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인사가 중단될 가능성마저 거론되면서, 일부 고위 공무원은 "이러다 현 정부 순장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승진하는 것을 선호하는 공무원들도 적잖다는 후문이다. 내란 중요임무종사자 혐의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구속된 경찰도, 국방장관부터 주요 사령관들이 줄줄이 구속 기소된 군대는 인사를 논할 상황 자체가 안 된다. 하지만 간부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후배들의 승진이 막힌 것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군과 검찰, 경찰 모두 인사에 예민한 조직인데 계엄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고, 주요 인물들이 수사를 받고 있어 특히 인사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조직 내부적으로는 인사 지연에 불만이 일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공기관의 사장 선임도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권남주 사장의 임기는 오는 17일 만료되는데, 탄핵 정국에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의 수장인 이재연 원장도 이달 1일로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 인선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작년 4월 윤형중 사장 사임으로 8개월째 이정기 부사장 대행 체제다. 최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도 수장이 없는 상태에서 대응했던 셈이다. 공무원 인사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는 인사 적체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공무원 인사 관리를 맡고 있긴 하지만, 고위직 인사와 관련한 운영 방향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3급 이하 각 부처의 승진 인사는 부처 장관에게, 그 위로는 대통령에게 인사 결정이 위임돼 있어 인사처가 나설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처 관계자는 "외부에서 문의가 들어와도 '대통령실에 물어보시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인사·행정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이 빨리 해소되는 길밖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해 차관급과 정무직 인사를 한다고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만큼 혼란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김영우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사권 행사는 수장의 권한 행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권한대행 입장에선 인사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며 "탄핵 정국 불확실성이 해소된 뒤 새 정부에서 공무원 인사를 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부처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