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사피엔스를 그 기원으로 봅니다. 현생인류는 우리를 제외한 근연종은 모두 멸종한 상태죠. 호미니데는 인류와 유인원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과를 뜻하고 호모는 사람속입니다. 여기에는 과거 호모 하빌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호모 데니소반스 등이 존재했었죠. 물론 네안데르탈인은 2만8,000년 전까지, 데니소바인은 약 3만 년 전까지는 우리와 같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이종교배도 있어서 현생인류에게 아직도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유전체가 일부 남아 있다는 것이 보고되곤 하지요.
대개 종 구분은 생식적 격리를 기본으로 합니다. 타이온이나 라이거와 같은 교잡종은 2세를 낳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외는 항상 존재하지요. 흑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 교잡종은 국내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교잡 개체가 다시 번식하기도 합니다. 이 현상은 자주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유전적 병목현상을 겪는 멸종위기종에게 새로운 유전자를 공급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된다면 유전적 오염이라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하죠.
갑자기 동물 진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발견되는 '피즐리' 혹은 '그롤라'라는 곰 때문입니다. 피즐리는 북극곰의 폴라(Polar)와 불곰의 그리즐리(Grizzly) 합성어고, 그롤라는 그 반대 합성어입니다. 전 세계 곰은 8종이 있고 가장 거대한 곰 두 종이 바로 불곰과 북극곰입니다. 북극곰이 북극 연안에 서식하는 것은 잘 아실 테고, 불곰은 북한을 포함하여 유라시아 대륙과 북미대륙 북쪽에 주로 서식하죠. 피즐리곰은 2006년 캐나다에서 수렵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한 이 잡종곰 수는 8개체로 모두 같은 어미의 자손들로 보고 있습니다.
이 중 첫 잡종 피즐리곰 암컷이 다시 불곰과 교배하여 새끼를 낳았다는 것도 중요하죠.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도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2009년 알래스카 북극해 인근에서 발견한 '브루노'라는 고대 북극곰에서 시작합니다. 약 1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브루노' 유전자를 통해 당시 북극곰과 불곰 사이에 광범위한 교잡이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불곰 유전자의 10%에 이를 정도로 고대 북극곰 유전자가 나타난다는 것도 확인했죠. 물론 불곰도 북극곰에게 유전체를 넘겨주었겠지만 하얀 눈이 쌓인 북극 해빙에서 사냥해야 하는 북극곰에게 불곰 유전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북극곰은 자신들의 순혈통을 유지해온 듯 보입니다.
그 한계가 이제 금이 가는 듯합니다. 기후 온난화로 북쪽으로 진출하는 불곰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과거 얼음이 얼지 않는 시기에 북극곰이 피신처로 이용하던 지역까지도 이제 불곰의 영역이 되고 있죠. 반면 북극곰은 북극 얼음이 얼지 않아 점점 남쪽으로 내려와야 하는 운명에 닥치고 있고, 결국 두 종의 조우 확률을 점점 올리는 듯 보입니다. 몇 만 년에 걸쳐 이뤄진 종 분화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혼동의 소용돌이로 빠질 듯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과연 북극곰이 북극곰으로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