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공공요금 인상으로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5%를 돌파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치솟은 물가가 경제활동 전반에 ‘도미노 충격’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경기 회복세에도 비상이 걸렸다.
27일 정부는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이례적으로 ㎾h당 5원 올렸다. 1·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며 전기료 인상을 인위적으로 억제한 이전 정부와 달리, 연간 최대 인상폭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전기료는 기본요금과 연료비 조정단가,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등을 더해 산출한다.
이번 인상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급격히 늘어난 한전 부채를 일부라도 줄이기 위한 조치다. 한전은 1분기에만 사상 최대인 7조7,869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언젠가는 국민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공기업 부채 해소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불난 물가를 부채질할 거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선 이번 전기료 인상분이 반영되는 다음 달 물가상승률이 6%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4년 만에 6%대 고물가가 초읽기에 들어선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7~8월 물가상승률이 6.0%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물가상승률(5.4%)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상태다.
전기료 인상은 기업의 생산과 투자, 개인의 소비에도 악재다. 우선 산업 활동의 원재료인 전기료가 오르면 생산·운영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담을 느낀 기업이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할 경우 물가를 추가로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이날 공개한 '지역경제보고서'에서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61%)은 물가상승에 대해 “가격 상승으로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실질 소득이 줄어들게 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들은 제품가격에 반영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또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공산도 크다.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3.3%)은 이미 201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기업·가계 등 경제 주체가 향후 1년간 예상하는 물가상승률 지표로, 임금·상품 가격에 반영돼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활비 압박을 느낀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소비가 부진하니까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등 경제 활동 전반에 도미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기료뿐 아니라 가스요금 인상 역시 줄줄이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이번 결정으로 다음 달부터 전기·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르고, 10월에도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이 계획돼 있다. 그간 물가오름세를 억눌러 온 공공요금마저 인상 물꼬를 튼 만큼 물가상승폭이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종전(2.2%)보다 두 배 이상 높여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7%) 역시 엇나갈 확률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하 교수는 “계속되는 대외 위험 요인까지 감안하면 정부가 수정한 물가전망치를 웃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를 넘긴다면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5.0%를 돌파한 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