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월북한 게 맞아?”
과장을 좀 보태면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이 일어난 2020년 9월 국방부를 출입한 나는,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백 번 가까이 받았다.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이대준씨)이 도박 빚 때문에 헤엄쳐 북한으로 귀순하려 했다니. 21세기에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과거에 북한을 찬양했거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에게 살해된 피해자를 안기부가 간첩으로 조작한 1987년 ‘수지 김 사건’이 떠오를 만큼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진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답하지 못했다. 국방부 발표를 전적으로 믿어서? 아니다. 오히려 군의 발표는 찜찜한 구석이 많았다. 월북 증거로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은 점 △선박을 이탈할 때 신발을 유기한 점 △부유물을 이용한 점 △북측에 월북 의사를 밝힌 점을 들었는데 마지막을 빼곤 너무 허술했다. 그마저도 특별취급 정보(SI)라 대화 내용을 공개 못한다고 했다. 무선교신 감청이나 위성 촬영 등으로 수집한 거라 노출될 경우 위험부담이 크다니 언론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씨가 피격된 후, 국방부가 공식 발표하기까지 36시간 넘게 걸렸는데 그사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이 있었다. 문 대통령 제안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고 군에 영향력을 행사해 발표를 늦췄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실제 국방부는 피격 사실을 알고도 언론에 ‘실종사건’으로 공지했다. 여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과하자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과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진 월북이라는 군의 발표를 믿은 건, 별다른 의혹을 제기하지 않은 당시 야당(국민의힘)의 태도가 결정적이었다. 작은 의혹도 파고들어 정국을 주도하려는 게 야당의 본성인데 보안서약서를 쓰고 SI 첩보가 담긴 국방부 보고를 받고도 ‘월북 공작’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긍하는 듯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물고 늘어지며 야성을 드러낸 것과 180도 달랐다. 대신 여당과 함께 월북 진위와 상관없는 SI 첩보를 공개하며 정보 장사하기 바빴다. ‘사살하라’를 뜻하는 감청 대화인 “762로 하라”를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것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다.
물론 이후 국정감사에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월북 조작 가능성을 거론했다. 유족과 계속 접촉한 것도 그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소수 의견으로 묻혔다. 당시 국회 속기록에서 “월북이라 해도 국민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는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년이 지나서야 ‘월북이 아니다’라며 진상규명에 나선 국민의힘 TF는 그제 “피격 당시 유엔사 판문점 채널은 정상 작동했고 합참은 사건 초기 월북 가능성을 낮게 봤다”는 내용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2년 전 국정감사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당시 국민의힘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야당의 직무를 유기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도 국회에 있다. 국방부 죄만 묻고 벌할 게 아니다.